#1
사람은 언젠가 이별을 한다지만, 그게 우리가 될 줄이야.
이제 1개월 뒤 우리는 서로에게 마침표를 찍고 남으로 돌아가.
지난 39개월 동안 섭섭한 것도 있고, 고마운 것도 있고, 정도 들고 그래서 이런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네.
처음 이 얘기를 꺼냈을 때 너는 너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봤었지.
아니, 너는 아무 문제 없어.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있었지.
그래, 내가 문제였어.
#2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어.
돈이 필요했거든.
처음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기를 닦았지.
그거 알아?
설거지는 뜨거운 물에서 해야 잘 된다는 거.
음식물 냄새와 뜨거운 수증기가 섞인 공간에 고무장갑 하나 끼고 들어가는 건 몇 번을 해도 적응이 안되더라.
그렇게 구역질 참아가며 버는 돈은 시간당 6300원이었어.
너무 힘들어서 한달 후에 그만뒀지.
그 다음엔 방과 후 교실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쳤어.
편안하게 앉아 애들 문제지 푸는 거 봐주면 시간당 8천원을 주더라.
왜 사람들이 화이트컬러를 열망하는지 알겠더라고.
그 후로 시간당 2만원 받는 과외도 해보고, 시간당 13만원 받는 이벤트MC도 했어.
시간당 버는 돈이 올라가면서 내 가치도 올라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지.
그렇게 나는 시간을 팔고 돈을 사는 일을 반복했어.
그리고 너를 만났지.
시간을 파는 입장에서 보면 너는 내 시간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사는, 나를 가치 있다고 인정해주는 존재였어.
남들이 한번이라도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존재가 나를 인정해주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아?
가족들, 친구들 모두 축하해주고 정말 행복했어.
#3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행복하지가 않더라.
그거 알아?
너와 함께하는 시간 이외에도 나는 너의 그림자에 묶여 있었어.
너는 항상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보길 원했고, 나는 따를 수 밖에 없었지.
우리는 분명 각자를 존중하는 사이였는데, 어째서 네가 주인처럼 느껴졌을까.
네가 주는 급료를 먹으며, 목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돌아다니는, 스스로 목줄이 채워진 강아지처럼 느껴진 건 그저 그런 망상이었을까?
이런 관계는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무섭더라.
*네가 주는 급료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
고민하고, 체념하고, 또 고민하며 너에게 길들여질 때쯤 퍼뜩 정신이 들었어.
시간을 파는 건 나지 네가 아니었다는 것.
나는 지금 너에게 시간을 팔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럼 팔지 않으면 된다는 것.
그래, 내 시간의 주인은 나였어, 네가 아니라.
#4
거리를 다니면 목줄이 채워진 사람들이 많이 보여.
대부분은 체념하고 살고 있지.
그러다 목줄을 끊고 나가려는 사람을 보면 어떤 이유인지 화내고 겁주면서 목줄을 끊지 못하게 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목줄을 끊기가 참, 쉽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해.
목줄을 채우고 살다 보면 정말 목줄없이 살 수 없는 상황이 올 테니까.
그래서 결국 말리는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켰어.
응원도 받았어.
몇몇은 부러워하는 눈치더라.
어쩌면 목줄을 끊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내는 화가 자신에게 내는 화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5
표현이 격했다면 미안.
채우지도 않은 목줄을 들먹이며 스스로를 강아지에 비유하다니.
그 당시 느낀점을 표현하는 상황이 그거 밖에 안 떠오르더라.
음.. 무슨 말로 끝맺어야 할까.
이런 이별이 처음이라 어색하네.
안녕. 잘 지내. 내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