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거라 곤 나를 바꾸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상대는 바뀌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피하고 싶은 대상을 바꿀 수 없었다.
나는 피하고 싶은 상황을 바꿀 수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나를 바꾸는 것.
그 뿐이었다.
30년 동안 세상을 겪으면서 알아낸 법칙이 하나 있다면, 어려울수록 큰 보상이 따르다는 것이다.
2등보다는 1등이, 낭비보다는 절제가 어렵다.
1등과 2등, 낭비한 자와 절제한 자.
그들이 얻은 보상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 가.
세상은 쉬운 일에는 적은 보상을, 어려운 일에는 큰 보상을 줬다.
항상 그랬다.
나를 바꾼다. 나만 만족한다.
상대를 바꾼다. 같은 문제로 상대를 바꾸고 싶었던 ‘나’들이 만족한다.
사회를 바꾼다. 같은 문제로 사회를 바꾸고 싶었던 ‘나’들이 만족한다.
어떤 일의 보상이 큰 지는 명확하다.
어떤 일이 어려운지도 명확하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해내고 커다란 보상을 받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도전한다.
그리고 얼마 후, 수긍한다.
‘나는 사회를 바꿀 수도, 상대를 바꿀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건 나를 바꾸는 것뿐.’
결국 즐기려고 노력한다.
사회는 견고하다.
어떤 논리도, 사상도 파고들기 어렵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꾸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즐기려고 노력하는 지는 알 수 있다.
현재는 자본주의 사회.
성공과 부를 키워드로 얼마나 많은 컨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는가.
왜 사람들은 성공과 부를 바라는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들은 즐기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
안되겠다는 느낌은 죽기 살기로 해보고 나서야 올 수도 있고, 조금 해보고 올 수도 있다.
조금 노력해보고 안되겠다는 느낌을 얼마나 신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판단은 본인의 몫이고, 본인이 본인에 대해 하는 판단은 꽤 정확한 편이다.
나는 회사생활 1년차에 안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골프도 해보고, 술도 열심히 마셨다.
사고만 늘 뿐이었다.
즐기기 위해 책도 많이 읽었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4년 차,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감에 허덕일 때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깨달았다.
피하기.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상황은, 사회의 시선만 외면하면 피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선망 받는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낙오자로 보여지는 선택은.
그래서 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에는 큰 보상이 따르니까.
즐길 수 없는 걸 피했을 때 나는 다른 즐길 거리와 여유,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과연, 어려운 일에 걸맞는 큰 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