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으로 말과 대화를 빼앗겼다.
이제 우리는 관계의 전문가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바쁜 하루를 보낸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는다.
TV 속에는 입담꾼들이 나와 근황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겪었던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전달한다.
TV 속의 사람들이 웃으면 TV 밖의 가족들도 웃고, TV 속의 사람들이 진지해지면 TV 밖의 가족들도 진지해진다.
역할은 명확하다.
말과 대화의 전문 생산자가 있고, 그것을 듣고 웃고 울어야 하는 소비자가 있다.
이것은 이상하다.
가족의 시간이고, 가족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말장난을 하고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 자리인데도, 그들은 말과 대화를 생산하는 주체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만을 갖지 않는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한다.
괜히 말을 섞었다가 서로 불편해지는 것보다, 혹은 어색하게 대화를 시도했다가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 것보다 프로페셔널한 전문 입담꾼들의 대화와 친밀감을 즐기는 것이 낫다.
그렇게 관계는 사라진다.
이제 가족의 시간에 가장 떠들썩한 주체는 TV를 앞세운 자본이 되고, 그 자리의 실제 주인공이어야 하는 가족 구성원은 수동적인 소비자로 흩어진다.
- 채사장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