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고민을 얘기하면 더 상처주는 상대’ 라는 게시물을 봤다.
그런 상대가 누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게시물을 확인했다.
고민을 얘기하면 더 상처주는 상대
부모님. 고민을 얘기하면 “너는 뭘 그런 걸로 찡찡대냐”,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 “네가 그렇지 뭐” 등의 말을 하며 상처만 줌
[댓글]
진짜 부모 역할 못할거면 애 낳지 마라
애부터 낳을 게 아니라 부모 자격부터 갖췄으면
씁쓸한 이해가 갔다.
5년 전, 친구들에게 ‘요즘 엄마한테 전화하면 엄마 할말만 하고 끊는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너도 그러냐’ 며 공감하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그리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우리는 서로 자기 얘기만 했다.
그때 확실하게 알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부모도 그렇다. 사람이니까.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내 생각’, ‘내 경험’을 얘기하는 것?
누구나 그렇게 한다.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왜 부모가 그러면 더 상처받고, 더 실망하는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부모가 ‘부모 역할’을 해줄 거란 기대.
부모 역할은 무엇인가?
자식을 굶기지 않는 것?
자식 말을 경청하는 것?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가난하지만, 내 말을 경청해주는 부모.
다른 하나는 부자지만, 내 말을 무시하는 부모.
어떤 부모를 선택하겠는가?
당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부모 역할’을 더 잘 할 거라고 기대하는 부모를 선택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만약 이 질문을 다른 1,000명한테 한다면, 그들은 모두 당신과 같은 선택을 할까?
아니, 1명이건 100명이건 당신과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온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부모 역할’이 다름을 의미한다.
‘부모 역할’이 사람마다 달라진다면 그것을 ‘역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차라리 ‘내가 부모에게 기대하는 점’이 더 어울려 보인다.
부모 역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부모와 자식은 관계다.
뭔가를 바라는 관계는 끝이 안 좋기 마련이다.
자꾸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면, 이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누구나 좋은 배우자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스스로 좋은 배우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신은 상대방이 바라는 점을 들어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