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르소설을 보다 보면 종종 악마와의 계약이 언급된다.
미래의 불행을 대가로 현재 원하는 것을 얻는 계약.
그 끝이 파멸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계약하는 인물들을 볼 때면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계약의 형태가 좀 친숙하지 않은가?
미래의 불행으로 현재 원하는 것을 사는.
작고 네모난 그것.
맞다.
신용카드.
현재 원하는 것을 얻고 채무에 시달리는 우리들의 모습이 소설 속의 악마 계약자들과 너무나 닮아 있지 않은가? 너무나.
#2
신용카드를 악마와의 계약으로 봤을 때, 미래의 불행은 채무이며 그 끝은 파멸이다.
신용카드 쓴다고 무슨 파멸까지, 너무 비약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는 않다.
먼저 우리는 신용카드로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원하는 대로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1달 뒤엔 내가 누린 것들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어쩔 수 있나, 열심히 일할 수 밖에.
듣기 싫은 소리 듣고, 가기 싫은 곳 가고,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열심히 돈을 번 당신은 겨우겨우 지난달에 누린 대가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달에 누린 대가가 새롭게 남았다.
뭐하고 있나?
다시 일하러 안 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기는 채무(불행)는 결코 끊을 수 없다.
아니,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계약의 해지.
오로지 그 뿐이다.
#3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위의 계약관계에 따르면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결국 불행이고 그 끝은 파멸인데, 요즘은 일을 하고 싶어서 난리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세상이 이상해서 사람들이 불행을 선망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불행이 사실은 불행이 아닌 것일까?
일하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기엔 불행스러운 증거가 너무나 많다.
당신은 일을 하기 위한 복장을 갖추고 깔끔한 모습이 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야한다.
그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은 보상되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에 들어간 비용이 불행으로 되돌아온다.
또, 당신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특정한 장소에 머물도록 강제된다.
그 장소에 머무르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역시나 불행으로 되돌아온다.
일하고 난 후의 시간은 어떤가?
그 시간은 오로지 당신을 위해 쓰여야 하지만 회식, 야근, 승진을 위한 공부, 자격증, 다음 날 출근에 대한 걱정 등 다른 불행으로 다가오지 않던가?
하루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지만 고작 8시간에 대한 보상만 하고, 사람의 시간(=인생)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자원을 돈이라는 대체 가능한 자원으로 바꾸게끔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때가 되면 계약 종료 후 나약해진 정신과 몸으로 치열한 정글에 들어가게 하는 이 일이 불행 후 파멸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런 인생을 선망하고, 이렇게 살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일하며 살아온 사람은 정말 그것에 만족했기 때문에 부추기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재미없게 본 영화를 재밌다고 추천하는 그런 장난스런 부추김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남들이 다 악마와 계약하고 있으니 자신도 해야겠다는 사회적 동물로서 특성이 발현된 것인가?
뭐 어쨌든, 오늘도 악마와의 계약은 성황이다.
안타깝게도.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