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중에 저거 사 줄게!’
진열 돼 있던 500만원짜리 밍크코트를 보고 대뜸 말했다.
‘아이구~ 우리 아들 엄마 선물 줄 거야?’
기특하게 바라보던 엄마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돈가스 였다.
행복했다.
엄마는 웃고 있었고, 돈가스는 맛있었다.
1997년 추운 어느 날이었다.
내가 처음 기억하는 우리 집은 3층 집이었다.
부모님이 손수 지었다고 했다.
30평 남짓했다.
집 둘레엔 화단이 있었다.
봄이면 화단 가득 진달래가 폈다.
화단 앞에 누워 봄바람 맞으면 잠이 솔솔 왔다.
세상 모르고 잘 때면 엄마가 밥 먹으라며 깨워주었다.
엄마는 식당을 하나 운영하고 있었다.
손잡이를 당기면 맥주가 나오는 기계가 테이블마다 있었다.
엄마를 따라 식당에 가는 게 좋았다.
돈가스를 먹고, 식당에서 일하는 형과 놀다 보면 잠이 솔솔 왔다.
눈 떠보면 엄마 등이었다.
엄마 등은 편안하고, 따뜻했다.
다시 자는 척했다.
어느 날부터 엄마는 식당에 가지 않았다.
유치원 다니느라 바빠서 심심 하진 않았다.
가끔 돈가스는 생각났다.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엄마도 사무실을 차렸다.
허름한 건물에 까만 글씨로 ‘서남부제일 공인중개사’라 쓰여 있었다.
4평 남짓한 공간.
엄마가 쓸 책상과 두 명이 앉을 만한 작은 소파 하나만 덜렁 놓여있었다.
요구르트를 먹고 금방 집에 갔다.
요구르트는 가끔 먹었다.
그 해 겨울, 유난히 추웠던 어느 날.
엄마와 백화점을 갔다.
오리털 잠바를 산다고 했다.
엄마 손을 잡고 걷다가 0이 여러 개 달린 털옷을 봤다.
0이 많으면 좋은 거라고 했다.
일주일 용돈 천원.
떡볶이 안 먹고 모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나중에 저거 사 줄게!’
그날은 돈가스를 먹었다.
돈가스는 하나만 시켰다.
엄마는 배가 안 고프다고 했다.
가끔씩 요구르트를 먹으러 갔다.
3층 집은 1층 집이 됐다.
10평 남짓했다.
아빠는 남이 됐다.
보증을 섰다고 했다.
새벽에 가끔 깰 때면 구석에서 작게 엄마 소리가 들리곤 했다.
다시 자는 척했다.
교복을 입고, 군복을 입고, 정장을 입었다.
일년에 두 번, 명절마다 요구르트를 먹으러 갔다.
2018년2월16일은 엄마 생일이었다.
그날로 환갑이 되셨다.
누나와 같이 파티를 계획했다.
신사임당이 둘러진 돈 케이크.
진달래를 좋아했던 엄마를 위한 꽃바구니.
회를 좋아했던 엄마를 위한 회 코스까지.
‘환갑이 뭐 별 거냐. 신경 쓰지 마라.’ 하셨던 입엔 꽃처럼 예쁜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 새벽, 오랜만에 엄마 소리를 들었다.
어떻게 할지 몰라 자는 척 했다.
엄마는 밍크보다 자식 온기를 좋아했다.
알면서도 드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