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수집하고, 연구를 통해 관점들을 발견하고, 이를 전시 공간에 ‘펼쳐 보이는 것’. 이 세 가지가
공공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들을 해 가는 사람들이 바로 ‘큐레
이터’입니다. 대중들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서입니다. 공공미술관에서 큐
레이터들은 아주 폭넓은 일들을 하지만, 그리고 그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큐레이터
라는 직업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입니다.
‘전시’(展示), 말 그대로 ‘펼쳐 보인다’는 뜻입니다.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사회적, 문화적, 역사
적, 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해 세상을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전시’입니다. 그러다면 조금 더 구
체적으로 전시라는 것이 무엇이며,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어떻게 전시를 기획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자신들의 생각을 공간에 실현 시킬까요?
각 사람의 성격이 다르듯, 큐레이터들이 만들어 내는 전시의 성격도 다릅니다. 어떤 큐레이터는 우
리 시대의 정치, 사회적 문제를 민감하게 다룹니다. 예컨대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세계 미술무대에서
크게 주목 받았던 오쿠이 엔위져(Okui Enwezer)라는 큐레이터가 있습니다. 그가 태어난 것은 1963 년. 영국의 오랜 지배를 받았던 나이지리아가 독립한지 3년째 되던 해입니다. 그는 나이지리아와 영
국의 문화가 혼재된 사회에서 성장했고 자연스럽게 식민주의가 남긴 사회적 상흔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독일에서 5년 마다
열리는 권위 있는 미술 축제 카셀 도쿠멘타(2002), 광주비엔날레(2008),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베
니스 비엔날레(2015) 등 전 세계 주요 미술 축제에 총감독을 역임하며 미술에서 ‘탈식민주의’(post-c olonialism) 문제를 중요한 화두로 제시했습니다
오쿠이 엔위져는 탈식민주의라는 ‘프레임’으로 세계를 해석했고 수많은 미술가들이 그의 전시를 통
해 조명을 받게 됩니다. 그가 발굴한 미술가들 중에 저와 인연을 맺고 2015년 대구미술관에서 아시
아 최초 미술관 전시를 가진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도 있습니다. 잉카 쇼니바레 역시 나이
지리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미술가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알록달록한 색채의 옷을 입은 마
네킹들이 등장하는데 역사적인 인물이나 이들과 얽혀 있는 식민주의 역사 문제를 우의적이고 해학
적으로 풀어냅니다.
엔위져처럼 식민주의 역사가 왜곡 시킨 세계를 고발하는 특정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큐레이터가
있는가하면 또 어떤 큐레이터들은 미술사적으로 작품들을 분석하여 전시를 기획하기도 합니다. 이
러한 경우 특정한 작가나 미술사조의 역사적인 맥락을 차분한 리듬으로 전개해 주기도 하고, 지금까
지와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 주기도 합니다. 혹은 미술사의 주요 흐름 언저리에서 주목받지 못한 어
떠한 미술가나 움직임을 발견해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발견해 미술사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탄생시
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