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경 이원형 목사 생가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지정
한국기독교사적 제36호로 지정되는 예식이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706번지 봉경 이원형 생가에서 오늘오전 11:00거행되었다.
이 집은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손인 이원형 목사가 태어나 성장한 곳이며
본관이 진성,호는 봉경,1886년 7월3일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706에서
아버지 이관호와 어머니 김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경주인 김기출여사와
결혼하여 1남 6녀를 두었다.
그는 혁신유림으로 5세부터16년동안 학문을 사숙,사서오경을 통달,20대엔
이육사의 주부가 일제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인근유지들과 가산을 털어 예안에
세운 2년제 신식교육기관인 "보문의숙"에서 민족교육과 자연과학 ,어학 등
신교육을 받았다.
1919년 3월18일 예안 3.1 운동을 주도한 협의로 서대문 형무소 수감, 옥중에서
석주 이상룡의 동생인 유림출신 이상동 장로의 전도로 기독교 신앙에 입신
하였다.
출옥후 안동성경학교,평양 장로회신학교,졸업후 영주중앙교회,이산의 용상교회,
안기교회(현 안동서부교회)등에서 목회를 사역하였다.
일제의 황민화 정책(창씨개명,신사참배)거부로 목사직 시무사면(1938.12.13)
당했으며,1939년 5월부터 8.15광복(1945) 까지 예비검속이란 형식으로 수개월씩
4차례 구금되었다.
광복후 경산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경안노회를 복구하고 경안고등성경학교
를 설립하여 교역자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안기교회를 안동서부교회로 바꾸어
복구했다.
1954년에는 제39회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으로 추대되어 신사참배 취소성명을
발표하였으며 그와 교인들이 8.15 해방 직후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건축한
"안동서부교회"는 일제의 식민지배 잔재를 청산한 상징적인 건물이되었다.
1958년6월21일 72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으며 정부에서는 예안면 3.1운동의
공로로 1980년 대통령표창,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으며,1999년
11월2일 대전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
한국기독교사적 지정예식은 1부감사예배 (경안노회주관),2부 지정식 (총회역사
위원회주관) 3부축하와인사 (안동서부교회),4부 제막식(안동서부교회)순으로
예식이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