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 총회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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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11시에 종친회 총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제 까지 살아오면서 문중행사에는 참석하지않았다.
시골 계시는 형님이 모든 행사에 참석하섰고 종친회
행사가 있다고 연락이 와도 행사가 보통 평일 에 실시되는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작년 연말 정년 퇴직하고 나니 문중 행사에도 참석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종친회 회장님 께서
오늘 총회가 있으니 참석하란 연락이 왔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무슨행사던지 날씨가 좋아야 행사 하기가 좋은데 비가
오니까 총회 참석도 망설여 젔다.

회장님과 약속도 있고 해서 행사장 에 시간 맟추어서 갔다.
도착하자말자 회장님이 오늘 총무가 일이 있어서 참석할수 없으니
임시총무를 맞아서 종친회 총회 회의를 진행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종친회 모임에도 처음 참석한 내가 어떻게 종친회 총회 사회를 볼수 있느냐고
반문했지만 내보다 젊은 사람이 없다면서 부탁해서
어쩔수없이 처음 가는 문중행사에 사회까지 보게 되었다.

회장님의 인사말씀과 우리 파평 윤씨 시조인 윤신달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은 신라의 천년 사직이 기울고 후삼국의
격동기에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 고려 창업에
공훈을 세우신 명신 이다.

조선 씨족통보와 용연보감등의 문헌에 의하면 시조 신달은 경기도 파주 파평산 기슭
에 있는 용연지 라고 하는 못 가운데 있던 옥함속에서 출생 했다.하며 그가 옥함에서
나올때 겨드랑이에 81개의 비늘과 발에는 7개의 검은점이 있었고 손바닥에는
尹 이라는 글씨가 새겨저 있어서 姓(성)을 윤(尹)으로 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특히 시조 신달은 문무를 겸비한 현신으로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기 까지 항상 곁에서
인의와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충간 했으며 통일의 대업을 달성 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하여 벽상삼한익찬이등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 의 관직을 받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파평으로 삼아 명문세도 의 가문으로 기틀을 다젔다.

혜종원년 에 동경 (경주)유수가 되었으며 광종24년 계유년(서기973년)에 경주에서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태사공께서는 동경유수로 출수하신 것은 태조 왕건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예종의
왕권 강화를 위한 훈공신 축출의 일환이였다.

평소 의심이 많고 심협한 예종은 큰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공신들에게
불안을 느끼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자녀들은 송도에 인질로 잡아놓고
지방 관리로 출수시킨 것이다.

공께서 경주에서 30년을 지내셨어도 이후 돌아 가시기 까지
그 자녀분들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묘소는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구봉산아래에 장례를 모셨으며
한식날에 춘향제를 지내고 음력10월1일 추향제를 지내고 있다.

회장님의 시조 어른 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올해 사업 설명을 협의한후에
춘향제와 추향제에 많은 종친들이 참석하기를 부탁하면서 오늘 총회를 마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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