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만큼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도 예외는 아니다.
노래와 책은 금지 되었고 영화는 잘려나갔으며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은 치도곤을 각오해야 했다.
한마디로 끽소리도 못하던 시절이였다.
젊은 교사들은 복도를 순시하는 교장의 눈을 피해 광주에서의 군사정권의 만행을 학생들에게 소곤거렸다.
좀 더 과감한 교사는 여름방학 독후감 과제로 이런 책들을 읽어오게 했다.
조영래–전태일평전/박노해-노동의 새벽/막심 고리끼–어머니
토요일 뜨거운 오후의 로타리,
닭장차에서 쏟아져나온 백골단들은 그들의 장비를 몸 여기 저기에 단단히 고정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 옆을 지나가는 버스 속 승객들의 시선을 즐기며 그들의 몸은 날듯이 가벼워 보였고 헬맷을 쓰기 전 그들의 얼굴들이 너무도 평범해 오히려 낯설게 보였다.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긴장감은 로타리를 지나 내린 거리의 인파 속에서 안도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불어나고 그들은 인도를 넘어 차도로 밀려 내려온다.
호.헌.철.폐.독.재.타.도.
외침이 빌딩 벽에 반사되어 거대한 울림이 된다. 하지만 그 안도도 잠시, 로터리에서 이쪽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오는 백골단을 피해 대열은 수식간에 흩어지고 그 위로 대낮의 축포처럼 최루탄 포말이 하얗게 쏟아져 내린다.
건물 안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토끼몰이를 당한다. 이제 갈 곳은 위로 향한 계단 뿐이다. 다급한 발소리들이 망설임없이 계단을 뛰어오른다. 각층으로 이어진 문들은 이미 굳게 닫혔다. 제발 옥상문이 열려 있기를 바라며 필사적으로 몰려 올라간다. 하지만 잠겼다. 저 너머에 사람이 있기를 기대하며 누군가가 옥상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꼼짝없이 갇혔다. 공포가 밀려온다. 순간 옥상문이 열린다. 마침 옥상에서 거리를 지켜보던 사람이 재빨리 문을 열었다 다시 잠근다. 옥상의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그 사람은 맞은편 옥상문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나가면 시장으로 이어질거라 안내해 준다.
시장거리는 이미 최루탄 냄새와 백골단을 피해 뒷골목으로 뛰어든 인파들로 어수선하다. 최루탄에 눈조차 못뜨고 연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시장통의 아줌마들이 연탄불을 내어준다. 연탄불의 훈기에 눈을 쬐면 따가운 눈이 한결 나아진다. 한쪽에선 아줌마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보도블럭을 들어 땅에 내려친다. 깨어진 돌을 잔뜩 모아 한 곳에 모아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기억과 영화의 장면들이 겹쳐진다.
그 때의 저 백골단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저 공안정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형사들은 또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순간 전두환보다 저들이 더 미워진다. 전두환을 단죄하는 것보다 저들을 모조리 단죄했어야했다.
어쩔수 없는 생계형 부역이라고 눈감아 준 것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다.
일제에 부역한 자를 처벌하지 못했고 군사정권에 부역한자를 처벌하지 못했고 이명박을 뽑은 백성들의 탐욕을 훈계하지 못했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적지근한 온정주의를 나무라지 못했다.
이만큼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바쳤고 누군가는 친구를 가슴에 묻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때 뭐했냐는 질문에 대학원생이라고 답할만큼 시대정신과는 거리가 먼 자신만의 영달을 위해 산 사람들도 있다.
요즘 그 자유를 공짜로 만끽하며 기생한 일부 우익,일베충들이 또 한 번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고 희화화했다. 이번에는 뉴욕 한 가운데 버젓이 광고까지하면서 말이다.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만약 내게 백투더퓨처 같은 차가 한 대 있다면 싸그리 저들을 구겨넣어 1987년으로 보내버리고 싶다.
끽소리도 못하던 그 시절로 말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