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1,2] 사와키 고타로 지음/이혁재 옮김/재인 출판사
평론가 김갑수씨가 인터넷 방송에 나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책을 언급했다. 일본과 한국에 세계 배낭여행을 유행시킨 시발점이 된 여행기이며 사와키 고타로란 일본 작가는 이 책을 쓰고 나서 먹고 살 걱정없이 평생을 여행다니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귀가 솔깃했다. 얼른 도서관으로 향했다. 총 두 권으로 이뤄진 책이었다. 두 질의 책이 있었는데 한 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빌려봐서 책 제본의 수명이 거의 다 된 상태였다. 다행히 두 질 모두 1,2권 다 얌전히 꽂혀 있어서 책상태가 양호한 놈으로 집어 들고 왔다. 큰 도시에 살 땐 오히려 이런 공공도서관이란 것을 이용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아담한 도시에 살다 보니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며 살고 있다. 좋아져도 너무 좋아졌다. 공공도서관 열람실을 이용하기 위해 자리가 날 때까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제 돈 주고 표를 사서 들어갔던 게 어제 같은데 이젠 웬만한 책들은 손쉽게 구해 읽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삼창에 이어 묵념까지 하고 싶지만 생략^^
제목이 멋지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뒤편 역자 후기에 따르면 원제목은 심야특급 midnight express라고 한다.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책제목은 바뀐 셈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처음 놀란 것은 이 당시가 70년대란 점이다. 우리나라가 해외여행이 모든 국민에게 허락된 것이 90년대였으니 이 저자가 우리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세계 여행은 고사하고 군대 제대 후의 빠듯한 삶을 고민했어야 했을 터이다.
저자는 친구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한 우연한 내기가 빌미가 되어 세계 여행을 실행에 옮긴다. 아시아에서 중동,유럽을 거쳐 영국에 이르는 길을 오로지 버스로 가보겠다는 ... 와우~ 나도 비슷한 계획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물론 갈수록 시린 무릎과 암호화폐 가격을 볼 때마다 조바심이 나지만 언젠간 꼭 길 위에 서리라.
여정이 대충 홍콩, 마카오, 말레이시아, 태국 이런 식으로 해서 인도, 이란, 터키로 해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머리에 아직 선명한 세계 지도가 그려 있지 않아서 지명을 따라 가다가 길을 잃는 경우가 내겐 허다했다. 낯선 지명만큼 그 명칭 위의 내 시선은 미끄러지듯 무심히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러다 눈에 번쩍 띄는 대목이 있었으니 마카오 카지노에서 여행경비 모두를 건 도박을 결심할 때이다. 손에 땀을 쥐는 아슬아슬한 순간과 흥미진진한 심리묘사는 단연 압권이다. 아마 인터넷 사이트의 무슨 무슨 후기 같은 글의 원조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두 번째 인상적인 것은 70년대 쓴 여행기라 여러나라 주민들의 순박하고 인심 좋은 외국인에 대한 환대도 많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풍경들이 그때부터 존재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관광지면 으레 있는 교통수단이나 숙박시설의 바가지요금과 길거리 환전의 성행 등인데 그것에 짜증내는 작가의 투정을 듣고 있노라면 여행이 주는 긴장과 짜증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세 번째는 가난한 나라의 싸구려 도미토리에 눌러 앉아 오도가도 않고 대마초를 피며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소일하는 장기여행자들의 매너리즘이었다. 장기 여행을 꿈꾸면서 난 이런 장면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지라 그들의 나른한 무위의 시간과 여행이 주는 이방인의 지위가 신선하면서도 경계의 의미로 다가왔다.
네 번째는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작가가 꽤 보수적이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여성과의 접촉이 없거나 싱거운데 이탈리아에서 어느 미술가의 늙은 미망인과의 이틀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잠깐 ... 26:61 이런 발칙한 상상이 들어가더라는.
이 책은 영국에서 일본으로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란 전보를 치면서 묘한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난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책을 쓰고 나서도 여행을 계속했다고 하니 정말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참, 그러고 보니 여기 스티밋에도 어느 외국 여자분이 포스팅으로 경비를 충당하면서 세계 여행을 즐기는 걸 얼핏 본 것 같다.
본문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저자가 페르시아 일화집에 있는 카브스 나메의 구절을 소개하면서 인용한 구절인데
나이들면 한 장소에 머물도록 하라.
늙어서 여행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특히 돈이 넉넉지 않은 자는 명심하라.
많은 나이는 적이며, 빈곤 역시 적이다.
그 두가지 적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가슴이 뜨끔하다. 더 늦기 전에 저 두 가지 적이 동시에 쳐들어오기 전에 난 길 위에 설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전보를 치는 방식이 전화 다이얼의 알파벳에 해당하는 숫자를 누르는 방식이다.
난수표 같은 의미의 숫자들이 재밌어 보여 소개한다.
9273-80824258-7308
WARE-TOUCHAKU-SEZU
われ到着せず
나는 도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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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보팅된 포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