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

Words
555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우리는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

첫 연애도 아닌 30대 초반의 여자에게 남자의 첫눈에
반했다는 이야기는 그냥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고 살아왔지만
어느 날 남자친구(현재의남편)에게 들은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어"라는 말은 나의 짜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연애의 시작에서 결혼까지의 과정이라는 건
순간순간 고비마다 다시 원점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처음 시작에도 나는 큰 기대가 없었다.
기대를 하면 무얼 하나? 이 사람이 평생 내 짝이
될 거라고 미래의 누군가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연애하다 잡았던 그 손을 놓는 게 얼마나 쉬운지
이제 알아버렸는걸.

큰 기대 없이 소개팅을 했던 나와 다르게 남편은
내 사진발에 속아 내심 기대를 했었다고 한다.
흠 내 사진이 좀 괜찮긴 하지... 가 아니고,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지만 남편의 이상형은
나와는 정 반대의 얼굴이었다.
쌍꺼풀 없이 큰 눈에 낮은 코 거기에 작은 입과 입술
통통한 볼살이 남편의 이상형이라고 하면
나는 여기서 낮은 코와 통통한 볼살만 해당된다.
얼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눈부터가
남편의 이상형과는 완전 거리가 먼 짙은 쌍꺼풀.

큰 기대 없는 여자와 이상형과 거리가 먼 여자를
앞에둔 남자의 첫 소개팅.
첫 소개팅 이후 각자 서로의 길을 가려던 우리가
3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된 비결은? 바로

착각

팔짱을 낀 채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에게
호감을 느낄 여자가 어디 있을까?
내심 표현은 안 했지만 자존심도 상하고
'너도 내가 별로 인가 본데, 나도 어디 가서 이런
취급받는 건 처음이거든?'
멀리서 왔으니 예의상 웃으면서 식사를 하고
그냥 갈 줄 알았는데 차 한잔 하자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서로에게 큰 호감이 없어서 그런지 나도 이 남자도
말이 술술.
'이야기하다 보니 관심사도 비슷하고 아쉽다.
친구로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소개팅에서 만나
친구되긴 어렵지!'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무리하기 위해

"가게요~"

라고 했다. 어? 이 남자 반응이 왜 이러지?
약간 멈칫하면서

"아니요~좀 더 있다 가게요~" 란다.

이 남자야 이 정도면 됐어 충분히 젠틀맨이야 라고
생각만 하면서 십여 분정도 더 있다가 일어났다.
가는 길이니까 집까지 가준다고 하길래
당연히 처음 본 남자에게 우리 집을 오픈할 필요는
없지! 하며 건너편 아파트 이름을 댔고,
이건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남편에게 놀림당하고 있는
중이다-_-

남편은 우리의 첫 만남 때
내가 자기와 헤어질 때 아쉬워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길래 아니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이날의 이야기를 하며 그때 내가
(아쉬운데) 벌써 가게요?라고 했었단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게요~"는 이제 마무리하고
집에 가자! 이 말이라고!

그리고 두 번은 없을 줄 알았던 우리의 만남은
또 한번 이루어졌다.
팔짱 끼고 나한테 이야기하시던 분이 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날 보러 온다는 거지?
하면서도 원피스에 평소에 잘 신지도 않는 힐을 신고
있던 나.
(나중에 팔짱을 왜 꼈냐고 물었더니 나온 배를
가리기 위해서 였다고 하니 봐주자! )

그날도 식사를 하고 차한잔 한 뒤 공원을 걸었는데,
남편 말로는 그날도 내가 막 신호를 보냈다고 했다.
그것도 손잡고 싶어 하는 신호를.

네? 아? 저... 저기요? 뭐라고요?

무슨 소리인고 찬찬히 들어보니
내가 공원을 걷는데 자기 쪽으로 막 붙어 걸으면서
손을 잡아달라고 가방을 바꿔서 들었다고 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나는 누구랑 걷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방을 들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바깥쪽으로 든 것뿐이야!
가방으로 사람을 칠수는 없잖아!

게다가 이런 이야기를 당시 친한 동생에게 말했더니
"그분이 오빠를 좋아하는건 확실하네~"라고 했단다.
아 얼굴도 아는 사이인데 만나서 해명하고 싶다.
진심-_-

그렇지만 남편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대부분 누군가를 만날 때
셋팅기로 머리를 만지고 나가는데
두 번째 만난 날에는 아무것도 안 한 신경 안 쓴
머리로 나갔다는 걸,
두 번째 만날 때 이 여자가 정성을 들이지 않고
나왓다는 사실을 안 남편은 얼굴에 점하나 찍고
나타나겠다며 부릉부릉!!

우리에게 첫 만남 이야기는 서로에게 상처뿐이니
이제 누가 먼저 반했느니 하는 말을 하지않는걸로?
아프잖아?ㅋㅋㅋ

이미지 15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