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표현의 적절한 표현 정도에 대한 고려

godknows(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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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글쓰기 참 좋은 날이네요! 오늘은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인 적정한 감정표현의 정도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다들 한 번쯤, 영화 속 인물이 소중한 사람과의 단절로 인해 절규하고 울음을 터뜨리면 그것을 보며 함께 울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때 우리가 그 장면을 보며 우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영화 속 인물이 처한 상황이 너무 불쌍해서 우는 경우도 있고, 내가 저랬다면, 내가 저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하면서 우는 경우도 있고, 어쩐지 자신의 경험 중에 저 것과 비슷한 경험이 있어 그것이 생각이 나 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중 인물의 감정에 동화되어 울게 되는 일은 대부분 동조효과로 인해 나타나게 됩니다. 동조효과란, 상대방이 울면 나도 왠지 울고 싶어지는 그런 것처럼 영화 속 인물의 슬픔이 어쩐지 내 슬픔인 것인 양 와 닿아 울게 되는 일을 말합니다. 상대방의 감정에 동화되어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독자가 인물에게 공감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인물이 할 앞으로의 일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줍니다. 소설 속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사랑이야기, 재난이야기 등등 대부분의 소설 장르에 있어 감정 표현은 어떤 장르 하나 가리지 않고 늘상 소설에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이 감정 표현이 극도로 배제되어 있으면, 소설은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써졌다는 느낌이 들게 되며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또한 소설 속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거나 최대한 절제 되어 있는 감정에 더욱 더 큰 감정을 느끼게 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소설 속에서 부모를 잃고 혼자 남은 아이가 나옵니다. 소설은 이 아이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가 내려 밤이고 낮이고 어두웠던 어느 날. 갓길에 잠시 정차되어 있던 차를 달려오던 트럭이 브레이크가 고장 나 멈추지 못해 차를 그대로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것으로 인해 차에서 내리려던 중년의 여성 한 명이 숨지고, 다음날 그녀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어린 나이의 외동아들은 어린 상주가 되어 검은 양복을 입고 제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몇 마디를 말하며 눈가를 훔치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끅끅대는 아이의 머리를 옆에 서 있던 아이의 고모가 쓸어주며 파르르 떨리는 작은 몸을 꼭 안았다. 아이를 뒤로하고 장례식 뒤치다꺼리를 하는 친척들의 발길이 분주한 장례식장은 금세 사건의 진상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최대한 사건만을 설명한 글 속 우는 아이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때 아이가 느낄 감정은 하나도 묘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며 이 글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은 안타까움과, 아이에 대한 동정심, 아이가 현재 겪고 있을 슬픔을 대신 크게 와 닿으며 느끼게 됩니다. 마치 어떤 일로 인해 힘든 사람이 매일매일 힘들다고 술을 퍼마시며 나에게 슬픔을 토로하는 것보다, 분명히 슬플 것인데 괜찮다는 말만 하면서 웃으며 걸어가는 그 사람의 등이 작아 보이는 것을 볼 때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최대한 감정표현을 절제한 글은 자칫 잘못하면 인물에 대한 독자의 공감도와 몰입도를 떨어트리고 사건을 재미없게 느껴지게 합니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이 자신 대신 슬픔을 느끼거나, 기쁨을 느낄 때 그것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감안해 감정표현을 최대한 풍부하게 해서 글을 다시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시는 이렇습니다.
‘퍼붓다시피 내리는 비는 사람의 마음에 최대한의 슬픔을 느끼게 하기 위해 내리는 비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오늘의 비는 소년의 눈물을 가득 뽑아내기 위해 내린 비였는지도 몰랐다. 잠시 정차해둔 차의 뒷 자석에 앉은 어머니는 아들의 생일 케이크 상자에 리본을 묶으며 간만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근 3년 만에 드디어 아들과 약속했던 초코케이크를 사온 그녀였다. 아들의 행복한 얼굴이 눈앞에 벌써 아른거려 그녀는 리본을 묶는 손길을 더욱 빠르게 재촉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그 순간 그 짧았던 행복은 허공으로 날아오른 케이크와 함께 큰 경적 소리를 내며 망그러졌다. 예상치 못한 불행이 그녀를 덮쳤다. 사건의 범인이 잡히기도 전에 급하게 그녀의 장례식이 조촐하게 치러졌다. 친척 손에 이끌려 장례식장에 도착한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받아든 처음 본 검은색 옷에 어리둥절해 고모의 얼굴을 바라봤다. 고모는 시큰거리는 눈가를 겨우 억누르며 아이에게 말했다. “얼른 이 옷 입고... 엄마한테 인사하러 가자.” 오늘이 자신의 생일인걸 아는 아이는 엄마가 여기서 생일파티를 하려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밝게 웃으며 대답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고모의 손을 잡고 장례식장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아이는 엄마의 사진에 둘러진 검은 리본에 이내 생일파티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저 어린 애는 어쩌고...” 하는 말들과 함께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은 친척들의 모습과 엄마의 사진을 가득 둘러싼 꽃들, 하얀 국화꽃에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엄마아!! 엄마 이거 아니지요?? 엄마아 죽은 거 아니지? 엄마 왜 이러고 있어요, 엄마...!” 아이의 눈가는 터져 나오는 눈물에 빨개지고 슬픔을 이기지 못한 작은 몸뚱아리는 바닥으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하나 남은 부모를 잃고 혼자 남겨진 아이의 슬픈 절규는 장례식장 안을 가득 메우고, 그 모습에 지나가던 친척들은 하나둘 눈물을 훔쳤다.’
이 글 속에서는 사고를 당한 어머니의 감정과 고모, 아이의 감정이 상세하게 묘사 되어 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엄마를 잃은 아이의 감정과 절규에 슬픔을 느끼며 안타까움으로 글을 읽게 됩니다. 아이의 눈물이 좀 더 섬세하게 상상이 되고 현재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경우에는 감정이 과다하게 독자에게 주입되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게 됩니다. 이유는?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나에게 너무 대놓고 직접적으로 들이밀면 오히려 그것에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슬픔으로 가득 찬 글은 아이가 안타까워 보이기는 하나 자칫 잘못하면 독자들이 이 장면을 읽으며 ‘음... 그렇구나. 안타깝네.’ 하는 생각만 들게 하고 넘어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공감이 완전히 실패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상 무엇이 맞고, 무엇이 그르다는 없습니다. 이것은 글을 쓰는 사람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그 사람의 개성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문체에 객관적인 -건 어울리지 않을 수도, 또는 어울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대로, 현재 쓰려는 작품의 의도에 맞도록 개인 재량으로 적절하게 표현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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