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할아버지 생신이 되면,
반 세기를 살아온 딸과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온 엄마가 함께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어제 저녁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제사가 내일이니까, 할머니께 전화라도 한 통 하라고.
바쁘게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또 잊고 있었구나. 죄송해진다.
문득 몇 주 전에 꿈에서 할아버지를 뵌 것이 생각 난다.
꿈 속에서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내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 버스 정류장에서 손녀 오는 걸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무슨 얘기를 했었던가?
할아버지, 저 장학금 받으면서 대학교 대학원 다 다니고, 지금 취직해서 원하던 일도 하고 있어요.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도 비슷한 일을 하는데,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할머니, 엄마, 아빠, 숙모, 삼촌, 동생들 다 잘 지내요.
아, 00이는 얼마 전에 군대 갔어요. 할머니가 안그래도 울먹 울먹 하시며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그냥 아무 말 없이 같이 걸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겨울 같지 않게 햇살 머금은 바람이 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함께한 많은 추억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나나빵이다.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 댁 아파트 상가에 조그마한 빵집이 하나 있었다.
빨간 궁서체로 '빵'이라고 적혀 있을 것 같은 빵집. 실제로 그런 글자는 없었지만, 거기 파는 빵들은 그런 느낌이었다.
1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무슨 무슨 역에서 내리면 할아버지가 항상 빙긋 웃으시며 맞이해주셨다.
집으로 가며, 항상 그 빵집을 들러 빵을 샀던 것 같다. 나는 항상 바나나빵을 골랐다.
체인점 빵집에서는 팔지 않는 빵이었는데, 바나나킥 같은 달콤한 맛이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 와서 학교 근처 빵집에 우연히 들른 적이 있었다.
거기도 '빵'이라고 적혀있을 것만 같은 빵집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바나나빵을 몇 년만에 보게 되었다.
그 뒤로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가끔 그 빵집에 들러 바나나빵을 사먹었다.
참 위로가 많이 되는 빵이었다.
사랑의 힘은 참 큰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함께 하지는 않지만,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바나나빵, 커피, 버스정류장, 모자, TV에서 나오는 영화 등등.
많은 것들이 추억을 불러오고, 그런 추억은 오늘 하루의 고됨을 잊게 해주기도 하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