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2017.7.8(40,147걸음)
오늘은 드디어 산티아고에 입성하는 날이다.

팬션에서 나와 마지막 순례길을 나섰다.
오늘은 많이도 안 걷고 역시나 평점 높은 숙소라 잠도 잘 오고 해서 늦게까지 자고 나오느라 해는 다 떴다.
나와서 바로 산티아고 길에 접어들게 되어 있는 것을 몰라 거꾸로 갈 뻔했는데, 숙소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시던 외국인이 방향을 알려주셨다. 그쪽으로 가니 금방 산티아고 길에 접어들어 뭔가 이득을 본 느낌이었다.

산티아고 길에서 먹는 마지막 모닝커피이다. 오늘은 뭘해도 마지막이겠지?
이제는 우리도 여기 사람들처럼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왕창 넣어 먹는다. 처음에는 분위기 있게 쓴 에스프레소를 즐겼었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이렇게 작은 커피잔에 설탕을 두개씩 넣어 먹는 걸 보고 너무 달게 먹는다고 생각했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요거트에도 설탕을 산더미처럼 넣어서 먹는다. 우리나라같으면 설탕이 몸에 좋으네 안 좋으네하며 절제했을텐데, 아무튼 우리도 설탕을 각각 하나씩 다 넣어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물론 맛도 좋지만, 오전에 걷는데 에너지 보충이 충분히 되는 것 같아 좋다.
아침에 이 카페에서 미국에서 온 메리할머니와 아넷할머니를 봤다.
감성 충만한 메리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마지막 날이니 천천히 걸어서 산티아고에 가란다.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꼭 다시 만나 즐겁게 인사하고 사진도 찍잖다.
그분들은 산티아고에서 이틀 묵고 피에스테라로 더 걸어가신단다. 거긴 0킬로 지점이 있는 유럽의 땅끝으로 산티아고에서 100킬로를 더 걸어야 나오는 곳이다.
이 할머니들 대단하시다. 걸음이 느린 우리보다도 훨씬 걸음이 느리신데도 언제나 그날의 목적지까지 꼭 오신다. 꾸준히 열심히 걸으시는 분들이다.
그리고 이분들은 생장부터 시작하셨다. 그러니 피레네 산맥도 넘으신 것이다. 그리고 100킬로미터는 더 가야하는 피에스테라까지도 마저 걸어가신다니 정말로 대단하시다.
처음에 아넷할머니가 무척 못 걸었었다.
아넷할머니 말이 "메리는 앞서 걸으며, 와~ 멋진 경치야 하며 감탄하지. 아무리 그래도 난 다리가 너무 아파 땅만 보고 걸었어. 하지만 이제는 내 다리도 좋아져서 열심히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래서 가끔 경치도 즐기지. 아주아주 좋은 길이야."하셨다.
정말 산티아고 길은 좋은 길이 맞다. 많이 뚱뚱해서 잘 못 걷던 아넷 할머니가 잘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있지만, 활발하고 감성 풍부한 메리 할머니와 달리 아넷 할머니는 수줍음도 많고 말수도 아주 적었었는데, 이렇게 명랑쾌활하게 자기의 감정을 한껏 표현하게도 만든 길이 바로 산티아고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쪽 구간에는 또 색다른 것이 있다. 바로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오래된 표지석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예쁘고 심플하게 디자인된 컬러플한 요즘 표지석이 아닌 그냥 돌에 조개 모양과 남은 거리만 투박하게 새겨져 있는 오래된 표지석이다.
나름 운치있다.
이제 12.5킬로 남았다네.
우리가 한달간 짊어지고 온 배낭이 색도 바라고 해서 표지석과 썩 잘 어울린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란히 걷고 있다. 지나가며 인사하고 잠시 이야기를 해 보니, 손자가 어리지만 아주 똑똑해 보인다. 산티아고의 역사에 대해 우리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영어로...ㅜㅜ
아버지와 두 딸이 산티아고 길을 걸으러 왔나보다. 사실은 딸이 둘이었다.
조금 전에 들렸던 카페에서 이들 부녀를 보았다. 한 딸이 다리가 아파 더이상 못 걷겠다고 울었다. 아버지는 한참을 난감해하더니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다리가 아파 울던 딸은 택시를 태워 보냈다. 아마도 산티아고로 보냈겠지? 거기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딸과 아버지는 나머지 산티아고 길을 걷기로 했나보다. 그래서 지금은 둘이다.
다리 아파 속상했을 딸이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포기하는 딸을 보고 속상했을 아버지나 나름의 감정이 있었겠지?
우린 잘 모른다. 그들이 휴가를 이용해 이 길을 걷는 이유는. 하지만 이렇게 같은 길을 우여곡절을 겪으며 같이 걸으면서 그들은 무언가 많은 것을 소통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소중한 무언가를 많이 얻게 될 것이다.
누구든 몸으로 배운 것은 오래 소중히 간직하는 법이니까.

오늘은 많이 덥지도 않고, 그렇게 치열하게 걷는 것도 아니라서 먹고 마시는 것이 그리 땡기지 않는다.
그래서 길가 작은 슈퍼마켓에 가서 엔쵸비 통조림을 샀다. 우리나라에 참치나 연어 통조림이 많이 있듯이 여기는 엔쵸비 통조림이 다양하게 많이 있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한 캔을 사고 바에서 시원한 마오이 병맥주를 사서 나무 그늘에 앉아 어제 먹다 남긴 고추 초절임과 같이 먹었다.
이렇게 먹으니 가격도 저렴하지만 양도 타파스 하나 시킨 것보다 엄청 많아 아주 좋았다.
이렇게 먹고 있으니 요게 딱 우리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날 우리의 진짜 스타일을 찾다니.
사진에서 묘한 느낌이 느껴진다.
점점 많아진 사람들이 줄줄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도 뭔가 순례행렬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왠지 가볍게 느껴진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탓이리라. 왠지 저 고개를 넘으면 산티아고가 떡하니 나타날 것 같은 설레임도 느껴진다. 그러면 우리의 여정도 끝이 날 것이다. 그런 생각에 아쉬움도 밀려온다.
지금껏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이런 묘한 느낌이 느껴지는 사진은 처음인 것 같다.

여기는 고조산이 있는 마을이다. 넓은 공원에 사람도 많고 조형물도 많다. 저넘어 언덕으로는 길게 나무가 심겨져 있고 그 앞에 단체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서 기념사진도 찍고 있다.
고조산이 있는 마을은 산티아고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마지막 마을이다. 경치도 좋고 큰 알베르게도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아침 일찍 산티아고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면 오전에 있는 미사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걸어보니 마지막 마을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이 마을과 산티아고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을이 산티아고와 거의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쁜 아가씨가 기념품을 수공으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나도 기념으로 조개무늬 귀걸이를 하나 샀다. 겨우 1유로에 팔다니, 너무 싸다.
이제 여정이 끝나가니까 왠지 아쉬운 마음에 이런 기념품들에 마음이 끌린다. 그동안은 뭐든지 짐이 된다는 생각에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오늘이 아니면 더이상 이곳을 기념할 것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뭔가 끝나가고 있는 느낌이 이런 것이겠지?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
@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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