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2017.7.3(33,358걸음)
오늘은 트리아카스텔라에서 사리아까지 걸었다.

어제부터 다시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그랬더니 둘이 룸에서 잘 때는 늦잠을 엄청 잤는데, 알베르게에서는 사람들이 일찍부터 움직여 우리도 덩달아 일찍 일어나 나왔다.
우리가 출발하려고 나왔을 때는 얼굴도 안 보이는 새벽이었다.
사진을 찍으니 얼굴은 어두워서 안 보이는데, 알베르게의 간판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어서 알베르게 이름은 나왔다.
출발하고 한참을 걸을 때까지 주변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길만 따라 걸으면 되기 때문에 마을을 벗어나 환해질 때가지 계속 걸었다.
마을을 벗어나니 다시 산길이다.
산에는 마을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소를 풀어놓고 소가 풀을 뜯어먹게 해주고 있었다.
가파른 산자락에서 소들이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풀을 뜯고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소는 옆모습만 보인다.
세로로 걸으면서 풀을 뜯어 먹으면 아마도 앞으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소들도 안전하게 가로로 걸으면서 여유있게 풀을 뜯고 있다.
이쪽 산간 지방에는 이렇게 가축을 기르는 집이 많은 것 같다.
어쩌다 만나는 마을도 소똥 냄새도 구수하게(?)나고, 소똥 때문인지 파리도 엄청나게 많이 있다.
순례자들은 지나가면서 이렇게 산에 방목되어 길러지는 소를 구경할 수도 있고, 집에서 풀 뜯으러 나가는 소들의 행렬과 그 소를 모는 소몰이 개를 자주 구경할 수 있다.
우리나라 소는 거의 색이 갈색인 황소인데, 스페인의 소는 황소도 있지만 흰소도 꽤 눈에 띈다.
어떤 집에서는 거의 젖소만 기르고 있어서 커다란 외양간에 얼룩이 젖소가 여러 마리 있고, 그 젖소의 젖을 짜는 장비들도 볼 수 있다.
밀이나 보리 농사를 대규모로 짓는 초반의 농가의 모습이나, 여러 산을 다 정비해 포도나무를 심어 놓은 농가의 모습과는 이곳 산골 농가의 모습은 또 다르다.
어쨌든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스페인의 농가의 다양한 형태를 직접 다 볼 수 있는 것 같다.
보통 유럽 여행을 하면 파리, 런던, 베를린, 로마 등 유명한 대도시를 구경다니며 박물관을 구경하고 멋진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고, 화려한 건물을 구경하고, 복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도시 유럽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데,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 유럽의 시골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시골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시골 민박집에서 잠을 자보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산티아고의 또다른 매력이다.
오늘도 산아래에 안개가 자욱하다.
어제는 산아래 있어도 구름처럼 보이더니 오늘은 그냥 안개처럼 보인다.
뭐가 다를까?
꼭 해안가에 바닷물 들어오듯 안개가 자욱히 산으로 들어와 있다.
어제는 산 꼭대기에서 이 구름인지 안개인지를 보며 내려오다가 낮에 해가 떠서 구름인지 안개인지 속으로 들어와 보지 못했다.
오늘은 바로 발아래 있는 듯한 안개이니 곧 걷다보면 저 안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에 숙소에서 일찍 나왔으니 금방 해가 뜨지도 않을 것이다.

길을 가다보니 표지석에 산티아고가 127킬로 남았다고 되어 있다.
와, 내일이면 100킬로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정말로 성큼성큼 산티아고가 가까워지고 있다.

안개가 말그대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천천히 언덕을 넘어 가고 있었다.
코 앞에서 안개가 천천히 산을 넘을 모습을 보니 엄청 멋졌다.
아이폰에 있는 타임랩스로 찍어 안개가 넘어가는 걸 담아보고 싶었는데, 안개가 얼마나 천천히 움직이는지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있는데 안개 구경하며 한 곳에 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눈으로만 감상하며 걸었다.
안개가 얼마나 천천히 움직이냐면 우리랑 나란히 걸으면 우리가 더 빠르게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가지고 안개가 오늘 안에 저 언덕을 넘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 그런데 한참을 걷다보니 우리 또 길을 잘못 들어섰다.
어제 미국에서 오신 메리할머니가 초반에 오르막을 오르다 계속 내리막을 걷는 짧은 길로 가신다고 하실 때, 우리는 먼 길로 돌아가는 길을 갈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오전 내 계속 오르막을 걷고 있다.
또 정보가 부족했던 것일까?
아무튼 처음에 생각했던 길이 아니었지만, 이 짧은 길이 대체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대체길은 원래 길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새로 개발하는 길이다.
계속 차도 옆을 가야 하는 원래 길을 대체하는 길이 생겼고, 알베르게의 청결이 너무 안 좋아서 순례자들의 불만이 많은 원래 길을 대체하는 길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통 대체길이 원래 길보다 좀 돌아가게 되어 있어서 거리가 더 먼데, 이번 대체 길은 오히려 원래 길보다 길이가 짧다는 것을 우리가 몰랐던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갈림길이 생기면 대체길로 가기로 했었던 지라 제대로 오긴 한 것이지만,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아침에 일찍 출발해서 마을 어딘가에 갈림길에 대한 표지판이 있었는데 못 보고 지나친 듯하다.
어쨌든 대체 길이라 가는 내내 쉴 곳이 없었다.
17킬로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길을 중간에 쉬지도 않고 걷다보니 오늘은 목적지에 11시에 도착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겨우 오전에만 걸었고, 산아래 마을로 내려오는 길을 걸은 탓에 하루 종일 안개 구경은 실컷했다.

아마도 이 사진이 우리가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의 사진인 듯하다.
남편이 신기하다며 찍은 사진인데,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파랗다.
그리고 아직 해도 중천에 뜬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 중간에 걸려 있다.
또 풀에는 이슬이 잔뜩 앉았고, 길에는 우리와 같이 걷듯이 안개가 천천히 흐로고 있는 사진이다.
이렇게 산 위의 맑은 날씨를 지나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 되었다.
이렇게 신기하게 안개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마법 속으로 빠져들 듯이 걸어 들어갔다.
그 이후로는 조금만 떨어져 있는 나무도 희뿌옇게만 보일 뿐 정확히 형태가 보이질 않는다.
안개 속을 걸으니 정신도 몽롱해진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뒤에 아무도 오지 않는 것 같다가도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리더니 서너 사람이 안개 속에서 뿅하고 나타난다.
그렇게 나타난 사람들은 우리와 “부엔 까미노~”하고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총총 걸어가 금세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조금 더 있으면 그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도 안개 속으로 묻혀 또 다시 길 위에 우리만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안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개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인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안개 속을 걷는 나를 사진으로 찍던 남편도 아마 날 안개 속에서 잃어버린 듯하다.
계속 안개 사진을 찍으면서 뒤따라 왔는데, 내가 갑자기 짠하고 나타났다고 한다.
이렇게 몽환적인 안개 속을 한참을 걷다가 우리가 안개를 빠져나왔을 즈음에 우리는 목적지에 거의 다 왔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안개 속에서 시간 여행을 한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이렇게 짙은 안개 속에서 걷는 경험은 흔하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리고 흔하지 않는 그 경험을 하는 내내 지금껏 살면서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도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스페인 청년 파블로를 만났다.
레옹에서 본 첫날과 달리 씩씩하게 잘 걷는다.
활기찬 청년이다.
오늘은 거리가 짧아서 목적지에서 더 갈 생각이란다.
그러게, 우리도 이렇게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 적이 없어 심각하게 고민했다.
파블로를 따라서 우리도 다음 마을까지 갈까?
하지만 그간 친구들과 떨어져 걸어서 심심했던 경험이 많았고, 친구들과 지낼 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아서,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적지로 되어 있는 마을에서 거의 다 묵으니 우리도 거기서 묵으면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아는 친구와 같은 숙소에서 묵으면서 많은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같이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거나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앞으로 며칠 안 남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앞으로 몇번 못 만날 친구들과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목적지인 사리아라는 마을에 들어서니 앞으로 115키로 남았다는 표지판이 있다.
그래, 아껴 걷자.
이 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소중하고 아까워진다. 그런 이 길을 천천히 아끼며 걷자.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
@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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