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오늘부터는 다시 숙소를 알베르게로 정하기로 했다.
레옹부터 산티아고까지는 인기 구간이라 숙소도 많고 그래서 경쟁이 되는지 시설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순례객이 많아 더 지저분할 거란 내 예상이 틀린 듯하다.
부킹닷컴에서 9.5의 평점을 받은 알베르게(complexa xacolea)는 우리가 꽤 일찍 왔는데도 다 차서 다음으로 평점이 좋은(9점) 팬션형 알베르게(lemos)에서 묵기로 했다.
시설이 현대식이고 아주 깨끗하고 널찍널찍해서 매우 시원하다.
숙소를 정해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와 레스토랑에 들렸다.
처음에 묵으려고 했던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인데, 아마도 이집은 레스토랑이 주업인 것 같다.
이 마을에 묵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레스토랑으로 와서 밥을 먹는다.
그래서 홀의 테이블도 모두 만석이고, 정원에 차양을 치고 마련해 놓은 테이블도 모두 만석이고, 가게 앞에 길가 양 옆으로 놓은 테이블도 거의 차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정원에 있는 테이블 중 아담한 분수 옆에 자리가 나서 겨우 앉아 식사를 주문할 수 있었다.
차양이 꼭 르느와르 그림에 나오는 차양이랑 비슷하고,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수다와 웃음 소리가 정말로 그 그림 속에 들어와 앉아 식사를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나온 음식도 맛이 아주 좋았다.
테이블마다 담당하는 웨이터가 있는데,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웨이터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매번 접시를 치울 때마다 맛이 어땠는지 묻고, 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어설품이 느껴진다. 그래도 그 어설품까지도 유쾌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이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오려는데, 한국분들이 레스토랑 앞 길가에 놓은 바깥 테이블에 앉아 계신다.
어? 일정상 내일이나 만나야 정상인데? 어찌된거지??
반가운 마음에 합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분들 오늘 제대로 고생하셨다.
아마도 우리랑 많이 친해져서 우리를 따라잡아 같이 나머지 길을 걷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튼 우리가 머무는 곳까지 계획하고 오셨단다.
우리가 한 이틀 30킬로 이상을 걸었기 때문에 우리랑 많이 차이가 났을텐데 무리해서 먼 거리를 걸어오신 것이다.
근데,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아니 꾀좀 부리시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돌아서 오셨단다.
그래서 오늘 하루 무려 45킬로를 걸으셨단다.
얼굴에도 "나 오늘 45킬로 걸었어."라고 씌여 있는 듯이, 약간은 자랑스러워하는 표정들이시다.
그래도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그 걸 다 걸으셨냐니까 동키서비스를 받았단다.
그럼 그렇지~
동키 서비스는 5유로를 주면 이전 숙소에서 다음 숙소로 배낭을 옮겨주는 서비스다.
아마도 옛날에 당나귀가 배낭을 싣고 옮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아무튼 요즘은 차로 옮겨주는데 이름은 그렇다.
배낭이 없으니 날아갈 것 같았겠지.
어쨌든 며칠 우리가 걷는 거리가 짧으니 내일 쯤 만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하루 앞당겨 한국분들을 보니 반가웠다.
이분들의 걷기 동무가 한명 더 생겼다.
한국에서 어제 오셨다는 문태형씨이다.
비오아저씨와 아는 분이라는데, 올때 배낭을 두개나 가지고 오셨다고 한다.
하나는 개인이 사용할 각종 생필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먹을 것을 싸가지고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신김치로 김치 볶음밥을 해먹었다며 얼마나 자랑들을 하시는지, 아무튼 많이 걸은 자랑, 한국음식 먹은 자랑 등 자랑이 늘어지신다.
이 마을에 묵는 사람은 모두 이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오는 듯하다.
미국에서 오신 메리와 아넷 할머니도 그렇게 걸음이 느린데도 우리랑 똑같이 오늘 이 마을까지 오셨나보다.
메리 할머니가 너무 반가워하면서 내일 두 갈래길이 있는 걸 알려주셨다.
우리는 이번에는 실수없이 긴 코스로 걷겠다고 했다.
신혼부부인 최다환, 함지혜 커플은 어디쯤 오는지 소식을 묻길래, 그들은 아주 천천히 걷고 있어요라고 알려주었더니, 장난끼어린 표정으로 “신혼을 즐기느라 그래.”라고 하신다.
여전히 유쾌하신 미국 할머니이다.
그리고 몰타에서 온 부부도 만나고, 우리와 밥 한번 먹자던 페르난도 아저씨도 만나고, 브라질 친구들도 이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왔다.
보는 사람마다 다 아는 사람인 듯 인사를 하는 우리를 보고 한국분들이 “산티아고의 마당발이네.”라고 감탄을 하신다.
우리도 잘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다국적으로 정말로 아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어쨌든 오늘이 생일인 엘리오 아저씨가 오셨으므로 우리는 그에게 무언가 꼭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식당으로 다시 들어가 다행이 이 식당은 와이파이가 잘 터져서 번역기를 켜고 “저 테이블에 있는 분에게 특별한 와인을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좋은 와인 좀 추천해주세요.”라고 스페인어로 웨이터에게 물었다.
웨이터는 스페인어로 되어 있으니 금방 자신있게 그 레스토랑에서 가장 비싼, 그래봐야 23유로로 우리나라돈으로 3만원 정도인 와인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금장식이 번쩍번쩍하게 되어 있어 정말로 특별해 보이는 와인이었다.
우리가 금장식이 번쩍거리는 와인을 엘리오 아저씨의 생일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우리가 엘리오 아저씨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러주고 와인을 한잔씩 따라 축하의 메세지를 전했다.
엘리오 아저씨가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엄청난 리엑션에 볼뽀뽀를 하며 하는 인사를 몇번이나 그리고 그자리에서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브라질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주고 그걸 우리에게 다시 자랑하고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벳토아저씨도 어제 우리가 선물하고 싶어했던 것을 알기 때문에 얼마나 칭찬을 하는지, 아주 좋은 와인이다. 너희가 탁월한 선택을 했다, 엘리오가 너무 기뻐하고 나와 로지도 너희에게 감사한다 하면서 외국인 특유의 감성을 보여주셨다. 계속 이 와인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설명해주시는데 그건 거의 못 알아들었다.
작은 선물에 아무런 격식없이 기뻐해주는 60이 훌쩍 넘은 이 낯선 나라의 낯선 친구들이 너무너무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오히려 친한 친구에게 생일을 축하하며 와인 한병을 선물하는 우리가 어색해서 얼떨결에 사진 한장도 남기지 못해 지금도 아쉽다.
그들과 어느 숙소 앞에서 찍은 사진
그들을 생각하며 내가 그린 그들의 캐리커쳐.
외국인들은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을 그렇게 어색해 하지 않고 맘껏 고마워하고 즐기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쑥쓰러워하는 것 같다.
뭐 우리가 이제 나이가 들어 우리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엄청 어색했다.
어쩌면 나이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산티아고 여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엘리오 아저씨가 좋은 기억을 가지고 브라질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묵은 숙소는 베란다가 아주 좋다.
앞에 넓은 산이 보이고, 해가 따갑게 비치는 베란다이다.
그래서 빨래도 잘 마르고, 비취 파라솔과 의자를 놓아두어 어떤 분은 오일 바르고 센텐까지할 정도로 해도 잘 들고, 앞에 경치도 멋지다.
우리도 우리 옷, 침낭, 배낭을 완전히 햇빛에 삶았다.
침낭을 걷어다 침대에 까니 한동안 뜨끈뜨끈할 정도로 제대로 삶아졌다.
혹시 붙어있을 빈대도 줄행랑을 쳤을 듯하다.
이렇게 햇빛으로 뜨끈하게 삶았으니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으로 잘 수 있었다.

숙소 로비에 있는 세계 지도이다.
이 숙소에 묵는 투숙객들이 자기가 온 나라에 깃발을 꽂았나보다.
유럽사람도 많지만 쬐끄만 한국땅에 빽빽히 깃발이 꽂혀있다.
정말로 한국사람들이 산티아고에 많이 오고 있다는 또다른 증거이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합류하는 탓에 숙소에 있는 사람 중 반은 아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반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모두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는 동지애로 어색함 없이 숙면을 취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
@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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