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2017.7.2(37,485걸음)
어제 그렇게 힘들게 정상에 올라온 보람일까?
아침에 일어나니 해안에 바닷물 들어오듯 구름이 산자락에 굽이굽이 들어 앉아 있다.
저멀리 지평선이 구름 때문에 수평선처럼 보인다.
산꼭대기 숙소는 춥지 말라고 창도 이중으로 덧창이 되어 있다.
옛날에 지은 집이라 이 덧창이 나무 창문으로 되어 있어 아침에 해뜨는 것도 전혀 모르고 7시까지 잤다.
가장 늦게 아침에 출발하는 날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짧은 코스니까 부담이 없다.
오늘은 오 세브레이로에서 트리아카스텔라까지 걸었다.
게다가 산꼭대기에서 잤으니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이 산 정상에서 거의 이틀 동안은 내리막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내려 가는 사람도 많이 있단다.
40킬로 이상을 계속 아스팔트 길로 내려 갈 수 있으니 아마도 자전거로 간다면 매우 신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다음에는 꼭 자전거로 순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아무튼 우리는 이번에 두발로 걸어서 꾸준히 산티아고까지 가는 재미에 쏙 빠져있기 때문에 자전거로 신나게 내려가는 순례자들을 볼 때 약간 부러웠지만, 우리도 수월한 발걸음에 좀더 신이 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이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사람들은 각 나라 스타일의 환호성을 지르며 말그대로 쏜살같이 내려가고 있었다. 엄청 부러움.

내려오는 내내 산과 어울어져 있는 구름의 비현실적인 모습을 감상하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흔히 구름과 안개를 구분하는 법을 하늘 위에 있으면 구름이고, 땅 가까이에 있으면 안개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 내가 본 것은 분명 내 발 아래쪽 땅에 있지만 아무리 봐도 구름이었다.
우리는 계속 “우리가 이렇게 내려가다보면 이따가 저 구름 속으로 들어가겠지?”하는 기대로 걸었다.
그리고 저 아래 사는 사람들은 저 두터운 구름 혹은 안개 때문에 산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구름을 사이에 두고 땅에 사는 사람들과 산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상에서 서로를 모르고 사는 것 같은 희안한 느낌도 들었다.
아주 동화같고 신비한 느낌이었다.
아마 이런 상상들이 동화를 만들어 내고 소설을 만들어 내고 시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아주 큰 순례자 동상이 있었다.
동상을 어쩌면 저렇게 생동감 있게 만들어 놓았을까?
산 정상이기 때문에 언제나 바람이 꽤 부는 지역일 것이다.
우리가 내려오는데도 바람이 무척 세게 불고 있었다.
그래서 이 순례자 상도 모자가 바람에 날라갈까봐 한손으로 꼭 부여잡고 걷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여기가 산꼭대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이렇게 바람과 맞서 걷는데, 그걸 아주 잘 표현해 놓고 있었다.
재미있는 조각이라고 생각하며 동상 앞에서 뒤에서 동상의 포즈를 따라해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어? 그런데 이 동상의 얼굴을 아래가서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그러네, 레옹을 벗어나던 아침에 봤던 그 순례자 동상이었다.
이것이 레옹에서 봤던 동상.
지친 다리를 쉬기 위해 신발도 벗어놓고 고개는 뒤로 젖히고 졸고 있던 그 순례자 동상의 얼굴과 똑같았다.
아마도 이 동상을 조각한 작가는 같은 사람일 것이다.
레옹에서 푹 쉬고 우리를 열심히 쫓아 여기까지 걸어온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길에서 어제 만난 순례자와 반갑게 “부엔 까미노~”하고 인사를 나누듯이, 이 순례자 동상과도 안면이 있으니 “부엔 까미노~”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왠지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재미있는 동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레옹에서 졸고 있는 모습도 거의 진짜 사람처럼 생동감이 있더니, 여기 산 정상에서 바람에 날아가려는 모자를 부여잡고 걷은 모습 또한 진짜 사람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그래서 또 우리에게 기대를 하게 한다.
혹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이 순례자가 산티아고 성당 앞에서 여정을 마친 세레모니를 멋지게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ㅋ
순례길에서 두번이나 만났으니 우리는 친구이다.
이 동상도 산티아고까지 포기하지 말고 잘 걸어와 주길 바란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
@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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