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퍼즐

ggenc1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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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만나 옛사랑을 되새기며 사랑의 의미를 찾는다.

영화 어디에도 사랑은 없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섹스신만 가득할 뿐
차라리 섹스 퍼즐이라 하는 게 나을 듯하다.

왜 정직하게 섹스퍼즐이라 하지 않고 거창하게 러브 퍼즐이라 했을까? 콜롬비아인은 섹스를 사랑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걸까? 이 영화가 영화상을 받았다는 데, 그럼 가치있는 뭐가 있는 건가?

영화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콜롬비아의 아수라장이 콜롬비아인의 의식이라면 그건 온통 쓰레기이다. 사랑은 그런게 아니야라는 걸 일깨우고 싶다면 그건 성공이다.

사랑은 나의 연장이고 하나가 되는 거다. 또한 권력행사이다. 같이 기뻐하고, 고통받고 하는 공유의 감정이다. 다른 면으로 내말을 잘 들었으면 하는 기대다. 이것이 무너질 경우 질투와 복수라는 반대에너지로 흐르기도 한다.

사랑하다 떠날 까 겁내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복수하고 종착역이 있듯이 위태롭게 되고 만다. 그래서 인생과 사랑이 슬픈 것이다.

처음은 찬란하지만 끝은 시궁창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흔적의 가면을 붙들고 눈물짓는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헤어졌고 잊지 못해 눈물짓는다. 그리고 또 살아간다. 아무 일 없는 듯.

비약을 하자면 그런 것 아닌가? 잘 놀았어 끝. 콜롬비아의 혼란은 철학의 빈곤, 사랑의 빈곤이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 어디에도 사랑은 없다. 이기주의만 있을 뿐. 의리와 믿음으로 완전에 다가가지 못하고, 하다 말고를 반복한다.

그것은 만남, 섹스의 갈구밖에 다름 아니다. 위대한 만남, 사랑과 거리가 멀다. 한 사이클이 완성되지 않은 불완전한 거다.

영화 데스풀은 히어로 영화다.
섹드립에 비현실적 설정, 온통 뒤섞어 놓는다.
비현실적 사랑까지.

하나의 미덕은 영원한 사랑이다. 얼굴이 괴물이 되어도 그녀에겐 언제나 변치 않는 사랑이다. 미국인은 영웅, 영원한 사랑, 권선징악의 순수함이 있다. 마치 세인에 나오는 알란 랏드의 쌍권총처럼, 트럼프의 투박하면서 직선적인 트윗처럼.

콜롬비아, 미국, 우리의 인식의 차이는 무언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차이가 그들의 생활상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랑은 쉽지 않다.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데 쉽겠나? 여기에 시간을 더한다면 더더군다나. 영원한 사랑은 애초에 불가능할 지 모르겠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로 보완하게 된 것일 것이다. 개인은 항상 위험하고 위태롭다. 사회와 제도로 묶여지지 않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