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비소설 인문학 분야 책을 읽다가 중간 쯤 진도나가는게 지지부진해졌습니다. (호모데우스, 세 종교 이야기 등) 좀 더 기승전결이 뚜렷한 소설을 읽고 싶어졌어요. 그러면서도 책장이 훌훌 넘어가버리는 쉬운 소설은 아니었음 했습니다. ‘고전’ 을 읽을 시기가 왔네요.
리디북스 홈페이지에 가니 인기 소설 상위권에 [인간실격]이 랭크되어 있네요.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지금까지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 일본문학이라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런데 이 책이 왜 상위권에 보이기 시작한걸까? 라는 궁금증이 생겨 읽게 되었습니다.
배경은 2차 대전 이후, 일본인들이 패전의 혼돈을 겪고 있는 시절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요조. (우리가 알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가수 이름과 같네요)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사회주의 사상을 배우면서 자신의 출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요조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인간들’과 자신을 분리해 생각했습니다. 내 기분에 충실하게 행동을 하거나 감정을 표출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 한 행동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감정표출을 해줍니다. 그래서 그에게 ‘익살’이라는 행동은 사람들 무리 속에서 자신을 감추고 평범한 척 살아내기 위한 ‘가면’이었습니다. 요조는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는 본성을 남에게 내비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마치 자신의 내면을 들키기라도 하면 이 사회에서 신뢰를 잃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가면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며 내 행동을 제어하며 살고 있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회사에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함으로 충성심을 표출하기 위해,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꽤나 사교적인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 내면의 본성을 숨겨놓고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누군가 가면 속에 숨겨진 나의 본성을 알아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또는 더 이상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썼던 가면을 계속 이어나가는게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진다면 어떨까요? [인간실격]의 요조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요?
요조는 이 상황을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자격을 상실한 ‘인간실격’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자격을 잃으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자살을 기도합니다.
이 세상이 자신에게 부여해 준 신뢰를 잃는다는 것 또는 신뢰를 져버리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누구나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라는 규칙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한 평생 그 규칙에 따라 거짓말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쳐 봅시다. (현실에서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 사람이 어느 순간 피치 못하게 거짓말을 했고, 세상이 그 거짓말을 알아챘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충격을 받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요? 인생의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혔을까요? ‘적어도 너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너도 남들과 다르지 않게 나쁜사람이구나’ 라는 세상의 편견을 듣고 괴로운 삶을 살아내야 했을까요?
요조와는 정 반대로 삶을 살아가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입니다. 조르바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인물입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괴상한 춤을 추며 자기 자신의 기쁨을 마음껏 표출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자살’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뉴스에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신뢰를 잃어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느껴진 이들이 이 삶을 포기합니다. 또는 마음의 감기라 불리는 ‘우울증’을 견뎌내지 못하고 병에 자신을 갉아먹힌 이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행하는 것이 자살입니다. 이 소설은 한 젊은이가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자살을 택하면서 끝맺음을 하게 됩니다.
인간실격.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기는 할까요? 설사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소중하게 얻은 이 삶을 스스로 포기해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요?
저라면, 적어도 내 삶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건 내 스스로가 아니라 우리 딸이 얼마나 올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는가로 판단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제 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죽었을 때, 제 딸이 저를 자랑스러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책, [인간실격]은 ‘자살을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의 가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던져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