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곡사옥이 완공되어 많은 수의 임직원이 마곡사옥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새로 지은 건물답게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옥 곳곳에 직원들을 위한 휴게공간과 사무공간이 이전 근무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렇게 설렘 반 걱정반으로 이주한 마곡사옥은 난데없이 마스크 파동을 일으켰다. 근무환경을 위한 전반적인 공사는 마무리되었지만 건물 내부 곳곳에서는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었고 인부들과 직원들이 여러 공간에서 뒤섞였다. 마스크 파동의 문제는 바로 공기였다. 갖 뽑아낸 커피에서 뿜어져 나오는 커피향처럼 사무 공간 전체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는 것을 재확인 시켜주듯이 화학적인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새집증후군부터 두통, 가려움증, 호흡기 문제까지 이곳저곳에서 직원들의 통곡이 터져 나왔다. 마곡사옥이 통곡사옥이 되었다. 급기야 많은 수의 직원들이 임시로 운영되는 건강관리실을 찾아가 황사마스크를 얻어왔고, 황사마스크를 착용한 채 업무를 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황사마스크까지 착용한 채 업무를 보고 있자니 직원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는 것을 본 마냥 키득거렸다.
본드 냄새, 저렴한 잡자재 냄새, 페인트 냄새까지.. 먼지 정도는 자연에 가까운 환경친화적인 녀석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때마침 방문한 CEO가 해당 문제상황을 인지한 것이다. CEO의 지시가 직접적으로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회사는 서둘러 엄청난 발표를 공지했다. 그것은 세계 일류 기업만이 시도한다는 재.택.근.무를 한시적으로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파격적이었다. 눈치 보지 말고 근무가 불편한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신청하라는 것이었다. 순간 직원들은 술렁거렸다. 너도나도 재택근무를 신청하겠다고 난리 법석이었다.(물론 그중에는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재택근무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 결과는 어땠을까? 다른 팀은 모르겠지만, 우리 팀의 경우 재택근무를 신청한 직원은 나를 포함하여 단 2명.(우리 팀은 약 20명)
개인적인 문제는 여기부터다. 팀장이 재택근무를 신청한 2명을 불러들였다. 내용이야 장황했지만 첫 마디는 꼭 해야 하냐는 것이다. 다른 팀의 경우 임신한 여직원들 정도가 신청하는 거 같고, 다른 건장한 직원들은 신청 안 했다고 은근히 눈치를 준다. 불안해하는 것 같지만 불안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믿지 않는 것 같지만 믿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예전 근무지에서 임시로 업무를 보는 것으로 중용안을 채택하였다. 근무 일지를 쓰는 조건하에.
수직적 군대 문화, 위계질서, 고정관념, 불통, 강요, 지시, 빨리빨리 그렇지만 양과 질은 뛰어나게, 질문을 요구하는 임원과 질문을 하지 않는 직원 등등..
한국 기업의 성장 동력을 저해하는 단어들이다. 이제는 웬만한 한국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문제다. 매 순간 지겹도록 마주한다.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문화는 결국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
보이는 것은 쉽다. 이미 누군가 앞서 그것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과정과 결과 모두 예측 가능한 범주에 포함된다. AI스피커가 그렇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뜨겁게 경쟁하고 있지만, 이미 해외에서 출시했었고 시장에 대한 반응도 어느 정도 윤곽이 보였다. 창의와 혁신으로 보기엔 단어에 대한 모욕이다. 모방과 개선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이처럼 보이는 것은 확인이 가능하다. 속된 말로 안전빵이다.
반면, 보이지 않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그것은 두려움을 동반하고 거대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용기는 확인이 아니라 확신에서 구현이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확신할 뿐이며,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면 된다. 옳은 선택은 없다. 어느 것이든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탁월했음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확신은 확인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만나 교차점을 형성하는 그 접점이 보이는 것으로 탄생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창의와 혁신 그리고 제2의 구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보이는 것에 대한 열망이 더 크다. 이것은 수직적 군대 문화의 본질과 연결성을 갖고 있다. 수직적 군대 문화는 명령과 규율로 타인에 대한 강요를 전제로 한다. 선험적으로 "이것이 맞다"는 뜻이다. 그 맞다라는 기준은 기성세대의 경험과 그 경험이 일궈낸 결과물로써 형성되었다. 압축과 고도성장의 찬란함. 그 찬란함은 기성세대들에게 있어 보였던 것들이다. 그것도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뚜렷하고 달콤한 기억이다. 반면 새로운 세대들의 문화는 그들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것들만 가득하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들 나름대로 고심한 끝에 결론을 내린다. 이것은 세대 차이 때문이라고. 세대 차이가 아니다. 세대 차이라는 표현은 어설픈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직원이 눈에 보여야만 안심하는 리더, 시도 때도 없이 회의를 하는 리더, 세밀한 부분까지 챙기려고 하는 리더는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다시 확인하려고만 할 뿐이다. 그러한 리더의 역할은 창의와 혁신, 그리고 자율과 책임이 주요한 덕목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대에 어떠한 가치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 확신할 수 있는 용기를 확인하는 사람이 다수를 이루는 기업만이 미래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혁명하려는 자가 혁명되지 않은 채 혁명하기 때문이다.” - 함석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