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부는 출근길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 맛도 향도 모르는 커피 아메리카노
너 없으면 왠지 허전하고, 너라도 있어야 덜 초라해보이기에
오늘도 습관적으로 내 곁을 지키는
맛도 향도 없는 아메리카노
구내식당에서 4천원짜리 점심을 먹고
회사 옆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를 사고
스타벅스가 아니여도 좋고
비싸면 비쌀수록 더 좋고
내가 마시는 커피는 커피가 아니기에
내 자존심 이기에
스타벅스 종이컵은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다는 위로감.
목에 걸린 사원증은 남들보다 조금 나은 듯한 안도감.
지갑 속 고이 간직한 여섯개의 숫자는 나만의 희망감
영혼과 바꾼 쌈지돈, 푸른빛의 주식은 나의 절망감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
안된다는 말은 아이들에게만 할 수 있는 내 입
보고도 못 본척하는 내 눈
상사가 부를땐 볼트보다 빠른 내 발
오늘도 나는 질근질근 씹어 먹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젊음을
오늘도 나는 쓱쓱비벼 꺼버리네
내 가슴 한켠에 남은 마지막 불씨를
불씨가 꺼질까봐 두렵지만
불씨가 되살아날까봐 더 두려운
차라리 잘리고 싶지만
잘리지도 않는데 하루하루 두려워 하는
내 머리는 장식품인가?
왜 밥 먹을 궁리 집에갈 궁리만 하는가
내 가슴은 냉장고인가?
왜 크기만 하고 뜨겁지가 않은가
내 인생은 내것이 아닌가?
왜 주말도 휴가도 못마땅해 안달인가
오늘의 마지막은 믹스커피
꿈에 그리는 정열의 스페인과 노곤노곤한 온천탕은,
침묵의 카페인과 달큰한 흑설탕속으로 아련히 녹아가고,
이제는 오랜 친구조차 녹여버린
나의 절친 믹스커피
늙어서 돈 있으면 뭐하리오
병들고 나약해져 시간나면 뭐하리오
꺼저버린 불씨는 다시 타오르지 않고
어느새 커버린 아이들은 가슴에 안을 수 없네
어제도 가족대신 커피 세 잔
오늘도 영혼 대신 커피 세 잔
내일도 미래대신 커피 세 잔
마셔도 마셔도 누군가 다시 채워놓는
달콤한 커피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