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지방에 살았을 때, 힘들거나 지칠 때 찾는 공간이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통도사였다. 계절과 날씨를 불문하고 어느 때 찾아도 위로와 위안이 되는 공간이였다.
통도사는 유명한 절인 만큼 365일 사람이 많지만, 대웅전을 한참 지나 산 속에 작은 암자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규모도 엄청 큰 절이라서 작은 암자를 찾으려면 차는 필수다.
평일 낮시간, 멀리 떨어진 외딴 암자에 주차를 하고 혼자 산책길을 걷다보니 정신없던 현실세계에서 나만 혼자 빠져나온 기분이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앉았다.
이병률 작가의 시집이라기에 무턱대고 빌려온 책을 읽지도 않고 며칠째 들고만 다녔다. 그 시집을 꺼내서 한장 한장 넘기던 중 가슴에 꽂힌 "삼월"이라는 시....
따뜻하다,고 해야 할 말을
따갑다, 라고 말하는 사람과
한계령을 넘었지요
높다, 라고 하는 말을
넙다, 하고 말하는 사람과
한계령에 있었지요
깊이 목을 찔린 사람처럼
언제 한번 허물없이 그의 말에 잎이 찔릴 수 있을까 생각했지요
첫눈이 나무의 아래를 덮고
그 눈 위로 나무의 잎들이 내려앉고
다시 그 위로 흰 눈이 덮여
그 위로 하얀 새의 발자국이 돋고
덮이면서도 지우지 않으려 애쓰는
말이며 손등이며 흉터
밖에는 또다시 눈이 오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지요
밖에는 천국이 지나가며 말을 거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눈 속에 파묻히는 줄도 모르고
당신이 모르는 것은 하나가 아니었지요
"삼월" - 이병률 / 시집, 찬란 중에서
천국이 지나가도 아무것도 모르는 이와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느낌일까 잠시 생각해봤다. 하아... 그러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몸에 힘이 빠지면서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한참을 앉은 자리에서 멍하니 있었다. 내 생각의 끝에 언제나 답은 없다.
통도사 경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 가만히 서서 바라보자면 그림같은 통도사 서운암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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