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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딜레마 hedgehog's dile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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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패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부분

난 아무것도 아니다. 비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다. 바다도 아니고 섬도 아니다. 난 아무것도 아니다. 내포도 아니고 외연도 아니다. 정의적 의미도 아니고 서술적 의미도 아니다. 애매도 아니고 모호도 아니다. 실루엣.... 난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마구잡이 낙서를 하고 있는데 쇼펜하우어의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 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추위를 견디고자 서로 껴안았지만 서로의 가시 때문에 심한 아픔을 느꼈어. 하지만 몸을 떼자니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지. 가시와 추위의 아픔이라는 두 가지 고통을 차례로 되풀이한 끝에 결국 서로를 찌르지 않으면서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알맞은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어. 이처럼 너무 가까이하기도, 그렇다고 멀리하기도 어려운 상태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해. 이 딜레마는 대인 관계에 대한 인간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야.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유지하는 경우가 있는데 너무 가까이하면 상처를 입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기 때문이지. 이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음의 어딘가에 상처받기가 두려워 겁쟁이처럼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를 ‘고슴도치 콤플렉스’라고 해.

사랑, 거리, 가시, 상처....
너무 가까이하면 상처를 입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다. 인간이 지닌 영원한 딜레마... 하지만 딜레마는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것이 딜레마라면 극복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은 논리와는 다르다. 사물과도 다르다. 아마 그 주체가 사물이거나 논리라면 당연히 적당한 거리를 그대로 지킬 게다.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움직인다. 다가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사실 그 사람에게 달려가는 마음을 인위적으로 붙잡을 수는 없다. 달려가는 마음에 인위적으로 저항할 때 당연히 상처가 생긴다. 그 상처는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만들어진 상처보다 더 크고 깊을 수도 있다. 나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달려가는 마음을 택할 게다. 달려가지 않는다면 최소한 남기는 기억조차 없으니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 또 하나.

00일보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 1억의 돈을 준다는 광고가 실렸다. 비행기, 로켓, KTX... 별의별 내용의 답변이 올라왔다. 그런데 결국 1등으로 뽑힌 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랑한다고 상처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사랑은 이런 행복을 만들기도 한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이 상처를 입고 입히기도 하지만 사랑함으로 인한 상처라면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그 사람들도 이미 그 이전에 사랑을 선택하지 않았나? 그리고 사랑하던 그때, 다소의 아픔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행복하지 않았나? 그렇다. 상처가 두려워 다가가지 못하는 ‘고슴도치 콤플렉스’는 극복되어야만 하는 허구이다. 고슴도치가 다가가지 못하는 건 고슴도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슴도치가 아니다. 인간이 지닌 가시는 고슴도치처럼 드러난 가시가 아니다. 그럼으로 인해 더 날카롭고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진실로 사랑한다면 오히려 가시가 서로 따뜻하게 품어주는 담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시를 담요로 바꿀 수 있는 여부는 결국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서로에게 주어지는 상처조차도 받아들이며 진실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도 존재하지 않는가? 제도로, 체제로, 도덕으로, 윤리로, 편견으로, 풍문으로, 사회적 분위기로 인간의 사랑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 그렇게 재단될 수 없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 모든 것은 현재 이 순간이다. 애틋하게 서로를 어루만지던 손가락으로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 삶이라는 이름을 지닌 존재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랑하고 있는 그들밖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가시가 되어 찌를지, 서로의 추위를 보듬어줄 수 있을지도 아무도 모른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아직 확신은 하기 어렵지만, 많은 길을 걸으면서, 또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 불어올지는 모르지만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충분한 수업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깨달은 삶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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