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으면 나를 잃는 것 같다.
어렸을적엔 몸속에 분출되지 못하고 들끓는 용광로 같은게 있어서 술을 들이 부으면 활활 타올라 존재 자체가 휘발될 것 같은 공포가 있었다.
기억되지 않는 순간이 두려웠고, 여차저차해서 한모금 꼴깍 삼킨 술은 지독하게도 맛이 없었다.
온갖 망상은 다 하면서 거부했던 술이 확실히 '마실수 없는 것'이 된 이유는 결국 느~무 '쓰다' 였다.
어쩌면 정말 술이 필요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전 일하던 직장이 남초였기 때문에 술자리가 잦았다.
그게 성비와 무슨 상관이냐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이 내게 말하는 술자리의 이유는 늘,
"우리 조직은 남자가 많잖아" 였다.
무능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절대, 주량과 업무 능력이 비례하지 않지만 그저 "못한다"라는 말 자체가 너무 싫었다.
주어가 술이든, 일이든, 운동이든 "못한다"를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왜그랬니,바보)
그때부터 '술안개'의 전설이 시작된다. <술> <안>마시고 <개>가 된다는.
나서서 건배 제의에 홀짝홀짝 마시는 척 잔 바꿔놓기
분위기 띄우는 노래 부르고 여자동료에게 짠짠짠 하이파이브
"술은 또 내가 잘 말아~" 쎈척 분위기를 이끄는거다.
메소드 주당 연기의 절정은 마신 사람들보다 얼굴이 더 발~갛게 달아오르는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도 내가 신기했다.
늘 그렇듯 술자리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 속의 말과 각자가 가진 기억의 경계가 문제다.
술안개로 살아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은 바로 필름끊김.
그래, 내가 바로 술자리의 '블럭체인'이었다.
(나한테 기록하기만 해봐, 못지워-_-)
술을 마신 사람들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무작위 삭제를 누르고 어느 지점 이후 기억이 날아갔음을 말하지만 내게 남은 기록은 영원하다.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그 필름은 정말 어쩔수 없는 지점에서 끊기는게 맞는지. 아님 유리한 지점에서 끊는건지.
것도 아님 끊겼다고 말만 하는건지.
"어제 기억이 하나도 안나" 라고 말하는 사람 뒤에서 얼마나 많은 부들부들과, 온갖 추태를 돌본 고생에 대한 빡침과, 취했어도 저건 무의식의 발현일거야.. 의 의심을 반복했던가.
해장국에 사우나 한번이면 말짱해지는 사람들과 다르게 기억의 숙취는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프리랜서가 되고는 회식자리에 갈 필요도 없고 주변에서도 술 안 하는 걸 알아 권하지 않는다.
어제 술자리는 친구와 그의 상급자분들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분위기를 크게 이끌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친구와 한번도 술자리를 해본적이 없어 주량 체크를 미처 못했다.
'순간' 지킬엔 하이드처럼 다른인격으로 취해버린 친구는 진심이면 어쩌지 두려운 말들을 연신 토해냈다.
바늘같이 날카로운 말에 맘이 아팠다. 거의 동 트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나보다.
이리 괴롭게 기억될 줄 알았으면 눈 딱 감고 소주 한병 원샷하고 기절해버릴 걸.
술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귀중한 선물이라고 하는데, 하느님의 선물을 거절한 나는 기억이라는 벌을 받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아침 그 친구는 기억이 전혀 없다했다.
또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걔도 적당히 먹었어야 됐고, 너도 적당히 털어야 돼." 라고 말한다.
오지은씨가 그랬다.
아, 적당함이란 얼마나 충족시키기 어려운 가치인가.
적당함은 분명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익숙한 새벽 세시>
스웨터에 빼꼼 나온 실밥을 뚝하고 끊어버리는 것 마냥 기억도 뚝 지울 수 있다면 좋겠다.
술자리의 블럭체인, 술안개의 기억은 소주만큼 쓰고 막걸리만큼 뒷끝이 가혹하다.
술.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