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오스에 투자하고 있지만, 이오스를 얼마 보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오스의 가격이 다소 떨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나는 차트를 보더라도 이오스가 계속 오르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이렇게 많이 올랐으니까 곧 조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만 있을 뿐 이오스의 엄청난 상승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희망이 분석에 영향을 미친다
아주 냉정한 사람은 자신의 욕구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바에 따라 현실을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 이오스가 조금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욕구" 내지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오스가 아무리 올라가더라도 "조정"이 올 것이라는 "분석"을 하게 된다.
앵클 보스 형제는 비트코인에 엄청난 투자를 했고 많은 이익을 얻었다. 이들은 비트코인이 올해 안에 2만5천 달러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측"한다.
만약 내가 이오스를 몇 백 단위로 갖고 있다면 나는 당연히 이오스가 더욱 더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할 것이며, 나중에 내 예측이 틀리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희망을 배제한 분석이 훌륭할까
답은 예스다. 희망을 철저하게 배제한 분석은 훌륭하다. 우리는 객관적인 분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희망이나 욕구를 배제하면 우리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
즉 우리는 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려는 욕구가 없다면 모든 투자 행위는 무의미하다.
자 내가 나의 희망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올바른 예측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예측이 나의 희망과 반대가 된다면 나는 그 예측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하락장에서도 손절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물론 손절을 기계적으로 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것은 더 낮은 가격에 사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손절을 하는 사람도 "손절"한 후와 그 전에는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
이미 암호화폐를 팔고 시장을 떠난 사람은 암호화폐가 계속 성장하는 데도 섣불리 진입을 하지 못한다.
자신은 기계적인 합리성으로 시장을 판단했다고 하나, 그 합리성이란 상황 변화에 얼마나 적응하기 어려운가!
손절을 기계적으로 하는 사람이 결국 끝까지 희망을 갖고 존버하는 사람보다 결과적인 수익율이 훨씬 더 낮게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시장이란 기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희망을 갖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장은 그 희망의 힘을 받아서 더욱 성장한다. 또 절망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절망을 근거로 더욱 하락한다. 만약 시장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면, 올라야 할 자산은 어떠한 등락도 없이 꾸준히 일정한 비율로 상승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지 않다. 끝임 없는 등락을 계속한다.
희망의 힘이 분석의 힘을 압도해 왔던 암호화폐 시장
암호화폐 시장의 경우 역사적으로 보면 희망의 힘이 분석의 힘을 압도해왔다.
과거 수많은 분석가가 암호화폐 시장의 0으로의 수축을 이야기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밀하며 객관적인 분석을 모두 물리치고, 암호화폐는 성장했다.
세상에서 객관적이고 엄밀한 분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위대한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재귀성 이론"을 들고 나왔다. 이 이론의 골자는, 시장에서 가격은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가격을 기반으로 시장 참여자의 희망과 기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일단 가격이 하락하면 그 가격을 기준으로 앞으로도 투자행위가 이루어진다.
가격이 오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이러한 재귀성 이론은 가격이 터무니 없이 떨어지거나 올랐을 때에도 성립한다.
현재의 가격이 언제나 투자행위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장 전체적으로 보아 대략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각 투자자에게도 기준으로 삼는 "준거가격"이 존재한다.
나의 경우에는 암호화폐 시장이 지금보다 더 낮은 가격일 때 진입했다. 그러한 고정관념이 나의 판단을 좌우한다. 나보다 더 앞서 들어왔던 사람은 지금보다 가격이 더 높고, 최소한 더 상승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오스의 가격은 누구의 희망에 따라 결정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