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중요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간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뿌리를 망각하면서 살고 있다.
예전 나는 뿌리라는 소설을 읽었고 영화도 보았다. 쿠타킨테가 노예로 팔려와서 생활하는 일대기와 그 후손의 역사가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왜 그토록 뿌리를 찾고자 했을까?
뿌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족보는 아주 고루한 노인의 놀이이다. 아니 요즘은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약성경은 처음부터 족보로 시작된다. 창세기도 그렇다. 수많은 족보가 등장한다. 그래서 요즘 사람에게는 성경이 인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장인어른을 모시고 대전에 있는 "뿌리 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내 아들은 장애가 있는데... 아마도 뿌리공원이 뭣 하는 곳인지는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즐겁게 외할아버지와 함께 공원으로 손잡고 들어갔다.
나의 부모님은 마음이 아파하신다. 손자가 장애가 있고, 과연 "대"를 잇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에게 뿌리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나무가 뿌리가 없으면 말라 죽을 것이다. 사람도 뿌리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종교적으로 "조상 숭배"를 혐오한다. 하지만 웃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한국 사회는 너무나도 나이를 많이 따진다. 나이가 서열로 굳어지는 문화속에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문화가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열 문화가 사회의 발전을 막고 있어서 이러한 서열을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간혹 서열을 타파한다는 미명하에 우리가 나온 근본 뿌리마저 부정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도 있다. 우리 인류는 어차피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온 인류는 동등하면서도 서로 존중할 인격이라는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이 사회는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온 인류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에서부터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뿌리를 구별적이고, 분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한 나무에 속한 존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