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영남학하 리더였던 김종직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대표적인 영남학파의 주역이었던 김종직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종직의 아버지 김숙자는 성리학에 정통한 인물이었기에 자연스레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성리학을 배웠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삼은'의 한명인 야은 길재에 문하생으로 자랐고 1453년 23세 되었을 때 진사로 과거시험에 합격하며 벼슬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세조가 단종을 몰아낸 후였습니다.
조선 전기, 성리학자들은 정의와 명분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계유정난 이후 많은 성리학자들이 정치와는 담을 쌓고 지방으로 내려 갔는데 이유는 명분과 정의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김종직도 마찬가지로 세조에게 공자와 맹자의 사상에 바탕을 둔 도학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지만 세조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관직을 박탈당하고 맙니다.
결국은 고향으로 내려가 사림파 성리학자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수많은 학자들을 길러내는 일을합니다.
그후 훈구파의 정치 횡포가 심해지자 세조 이후 다음 왕이었던 성종은 정치 개혁을 위해 김종직을 중앙으로 불러들이게 됩니다.
김종직은 당연히 그의 제자들을 불러들였고 그들은 주로 3사인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에 근무했는데 훈구파를 강하게 비판을하게됩니다.
위기감을 느낀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들은 이렇게 해서 시작됩니다.
김종직은 노후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수많은 학자들을 키워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김굉필, 김일손, 남효온, 정여창들입니다.
이들이 1대 제자들이라면 훗날 중종 때 등장한 조광조는 2대 제자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계보가 이어지면서 훗날 이황이 등장하게 되는것입니다.
이 학파들이 바로 영남학파입니다.
1492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1499년 성종실록을 편찬할때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왕이 세상을 떠나면 그 왕의 실록을 만드는데, 이 실록에 들어갈 기초자료를 사초(史草)라고 합니다.
왕도 함부로 못 보는 기밀문서인데 대부분 학자들이 기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초에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은 세조가 왕에 오르기 얼마 안 되어서 쓴 것이었습니다.
항우가 초나라 왕 의제를 살해한 것을 비난하고 의제를 애도하는 내용인데 김종직은 세조를 항우에, 단종을 의제에 비유한 것입니다.
당연히 세조를 비난하는 풍자시로 여겨졌습니다.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은 이 조의제문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사초에 기록했는데, 훈구파에겐 사림파를 제거하는 좋은 구실이 되었습니다.
훈구파의 리더였던 유자광이 연산군에게 악의적으로 보고를 올렸고 폭군이었던 연산군은 사림파를 제거할 기회를 삼아 사림파를 닥치는 대로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그래서 다음은 조선 최고의 폭군이며 독재자였던 연산군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영남학파의 리더였던 김종직과 그가 쓴 조의제문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