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과 함께하는 한국사이야기 48) 최무선 - 화약 신무기로 왜구를 격퇴하다 / Korean history
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최무선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와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역사를 왜곡과 부정하는 일본을 위해서라도 기술과 힘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화통도감은 1377년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되었는데 3년 뒤인 1380년 제대로 실력을 발휘를 하게 됩니다.
그해 왜구가 금강 하류에 있는 진포로 쳐들어 오는 일이 발생하는데 3년간 화약 무기를 개발하고 병사들이 화약을 잘 다루도록 훈련을 한 덕분에 왜구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최무선은 부원수로서 현장을 지휘를 하였습니다.
육지로 올라와 노략질을 하는 왜구를 향해 화약을 사용한 불화살을 쏘았고, 신무기에 놀란 왜구들은 우왕좌왕하는 사이 왜구의 배들은 화염에 휩싸여 모조리 침몰했습니다.
이 전투가 바로 진포대첩입니다.
3년간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면서 화통도감에서 만든 화약 무기는 모두 18종류나 되는데 그중에서 특히 주목을 끈 것이 주화라는 것입니다.
바로 번역하자면 '날아가는 불'인데, 화약을 이용해 로켓처럼 발사하는 화살입니다.
무기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병사가 필요하겠지요?
최무선은 화약을 다루는 포병 부대도 양성했습니다.
만약에 왜구의 배가 잽싸게 도망가 버린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무거운 화포와 포탄을 싣고도 견딜 만큼 튼튼한 군함도 만들었습니다.
진포대첩의 대승이 절로 얻어진 게 아니라 화약무기, 병사, 군함 삼박자를 모두 준비해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최무선은 일찍이 화약 무기에 관심이 많았지만 고려에서는 제조법을 터득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고작 해봐야 불꽃놀이에서나 화약을 썼을 정도였으니까요.
원과 명은 만드는 제조법은 비밀이었기에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고려인들마저 최무선이 어리석은 시도를 한다고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강한 집념의 사나이였던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개의치 않고 중국에서 상인이 올때마다 예성강 입구에 있는 벽란도로 가서 중국 상인들에게 화약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화약 원료인 염초를 만드는 법을 알아내게 됩니다.
이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성능이 좋았습니다.
본격적으로 화약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조정에 관청을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지만 조정에는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쉽게 관청을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끈질기게 관청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시기에 마침 왜구들이 점점 북쪽까지 올라와 강화도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강화도에서 조정이 있는 개경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우왕도 최무선의 제안을 눈여겨보기 시작을 했고 마침내 1377년 10월 화통도감설치에 동의를 해서 설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화약 무기의 성과는 진포대첩에서 확실히 입증이 되었습니다.
큰 타격을 입은 왜구는 그 후로 한동안 노략질을 하지 못하였는데 3년 정도가 지나자 왜구가 다시 남쪽에서 노략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도 환갑을 넘긴 노구를 이끌고 직접 함선을 타고 전투를 지휘해 이번에도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처럼 외적의 침략이 이어지면서 고려 후기 민중의 삶은 정말 참으로 고단했습니다.
북쪽에는 홍건적이 들끓고, 남쪽에는 왜구가 판을 치고, 특히 왜구로부터 입은 피해가 컸습니다.
바닷가 백성들은 항상 왜구의 공포에 시달렸는데 그 공포를 없애준 인물이 바로 최무선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가장 존경을 받는 영웅은 최영 장군이었습니다.
다음은 요동 정벌을 놓고 이성계와 갈등을 벌였던 최영 장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최무선의 화통도감과 진포대첩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