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과 함께하는 한국사이야기 47) 우왕 -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폐위되다 / Korean history
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고려 우왕입니다.
참으로 애뜻한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어린 우왕 드라마 대풍수의 한장면 ]
열살에 왕에 올랐는데 그 어린 왕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실상 할머니인 명덕태후가 정치를 맡았는데 그나마 태후가 살아있을 때는 다행이었지만 태후가 죽자 우왕은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후 이인임이라는 대신이 왕의 뒤에서 권력을 쥐고 흔들었고 신하들은 권력투쟁을 벌였습니다.
국민적 영웅이었다 최영과 이성계는 1인자인 이인임을 견제했고, 결국엔 유배를 보내게 됩니다.
이인임을 믿고 의지하던 우왕은 혈혈단신이 돼 버렸고 최영이 사실상 1인자가 되고 이성계가 최영을 견제하는 형국으로 바뀌게 됩니다.
[최영장군 영정]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가 1388년 고려에 통지문을 보냈는데 원이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지역을 내놓으라는 요구였습니다.
그곳에 자기들이 철령위를 설치해 다스리겠다는 거였습니다.
터무니없는 요구에 대신들과 최영이 반발을 하였고 최영은 즉각 명의 기지인 요동지방을 정벌하자고 주장했게 됩니다.
그때 이성계가 4대 불가론을 내세워 반대를 합니다.
"첫째, 작은 고려가 큰 명나라를 거역해선 안된다. 둘째. 농번기인 여름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셋째, 정벌을 나간 사이에 왜구가 침략해올 수도 있다. 넷째, 장마철을 맞아 전염병이 돌 수 있고 아교가 녹아 활이 쓸모 없어질 수 있다."
이렇게 최영과 이성계가 맞서게 된 상황에서 우왕이 어느 한쪽을 결정을 해야했습니다.
하지만 왕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결국은 1인자였던 최영의 손을 들어주고 총사령관인 팔도도통사에 최영을 이성계를 우군도통사, 조민수를 좌군도통사에 임명하고 정벌을 명하게 됩니다.
1388년 4월 18일 이성계가 조민수가 요동 정벌에 나섰고 19일 후 부대는 압록강 하류의 섬 위화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성계는 평양 기지에 있는 최영과 우왕에게 다시 한번 군대를 돌리자고 청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이성계는 반란을 결심을 하고 군대를 돌려 평양으로 진군을 합니다.
이게 바로 위화도 회군입니다.
이성계는 반란은 성공을 한 후 권력을 잡게 되는데 이후 1인자 였던 최영을 처형해 버립니다.
이성계 일파는 우왕이 공민왕이 아니라 신돈의 자식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신돈의 첩이 어머니라는 이유였고 정당한 고려 왕족의 혈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결국은 우왕을 폐위시키고, 강화도로 유배를 보냅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신진사대부는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었는데 이색과 정몽주는 온건파 정도전과 조준은 강경파에 속한 인물입니다.
조준이 최무선의 건의로 1377년 만들어진 화통도감(화약을 만드는 곳)을 없애자고 제안을 합니다.
당시 최무선은 왜구를 격퇴하려면 화통도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인물입니다.
우왕이 들어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아서 설치를 허락했는데 화통도감은 우왕이 폐위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고 그 후에는 군기감이란 기관이 화약 제조 업무를 맡게됩니다.
다음은 화약 신무기로 왜구를 격퇴시킨 최무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