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과 함께하는 한국사이야기 32) 고려 광종 - 과거제도 노비안검법을 통해 제도를 정비하여 강력한 왕으로 등극하다/ Korean history
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는 고려 광종입니다. 943년 태조 왕건이 세상을 떠나고 2대 혜종과 3대 정종은 호족들의 권력 다툼에 휘말려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치지도 못했습니다 949년 태조의 아들 왕소가 왕위에 오르는데 바로 광종입니다
[KBS 드라마 광종역을 맏은 배우 김상중님]
광종은 개혁에 열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왕권이 강해질 때까지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 했습니다. 혜종과 정종처럼 호족에게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족들의 비위를 맞추면 7년을 참았습니다. 그 사이 개국 공신을 몇 등급으로 나누어 곡물을 달리 지급했고. 물론 공이 높은 사람은 많은 곡식을 받았겠죠. 이 작업을 통해서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골라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도 늘었기 때문에 956년 호족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바로 노비안검법입니다. 전쟁 중에 노비로 전략한 평민들을 모두 풀어주라는 내용입니다. 호족들에게는 타격이 컸겠죠. 노비에게 농사를 시켜 경제력을 키웠고, 또 훈련을 시켜 사병으로 삼았는데 그런 노비가 줄어드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호족들이 반발을 하였는데 광종은 더 강력하게 밀어붙여습니다. 2년 후인 958년 노비안검법에 버금가는 개혁 단행합니다. 바로 과거제도 실시입니다.
그전까지 중요한 벼슬은 호족 가문이 모두 차지했습니다. 5품 이상의 경우 시험 없이 관직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것을 음서제도라고 합니다. 그들은 공음전이란 땅도 꽁짜로 받았습니다. 은퇴할 때가 되면 자식에게 관직과 땅을 모두 물려줬는데, 이 풍토를 뜯어고치려면 관리를 뽑는 제도부터 개혁한다고 생각하여 과거제도를 실시했던 것입니다. 광종은 중국 후주 출신인 쌍기를 발탁해 과거제도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문관을 뽑는 제술과의 명경과, 기술관을 뽑는 잡과, 승려를 뽑는 승과 등 과거시험을 시행했습니다. 참고로 무관을 뽑는 무과 시험은 고려에 없었습니다. 이제 호족의 권력은 약해졌고 왕권은 강해졌습니다. 광종은 스스로를 황제를 불렀고 수도 개경은 황도로 불렀습니다. 또 광덕이나 준풍과 같은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아마도 자신감이 넘쳤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말년으로 갈수록 잔인하게 변했습니다 호족들은 모두 숙청했고, 가족까지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래도 고려 광종 때문에 고려의 기틀을 잡은 것은 인정을 해 주워야 할 것입니다
[고려 최승로]
과거시험을 관장하는 벼슬이 '지공거'라고 했는데 광종 통치 시절 8회의 시험이 있었는데 쌍기를 포함해 고려에 귀화한 외국인이 주로 이 벼슬을 맡았습니다. 아무래도 국내 유학자들은 못마땅했고 그들은 지공거를 맡아야 할 인물이 따로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바로 최승로인데 고려 유학자들의 리더였습니다. 오늘은 과거시험과 노비안검법을 시행한 광종에 대해 알아보났는데 다음은 고려의 통치 이념을 정립한 최승로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