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과 함께하는 한국사이야기 30) 후고구려 궁예 - 혁명가인가 독재자인가 /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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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unhaesarang@eunhaesarang입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는 궁예입니다. 궁예는 신라의 버려진 왕족 혈통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신라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처음에는 리더가 아니었고 견훤에 비교하면 후발주자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북원(강원 원주) 양길이 발란을 일으켰고 곧 북원 일대를 양길이 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참모가 없었습니다. 대업을 이루려면 전략가가 필요로 한데 바로 892년 궁예가 합류합니다. 궁예가 합류하면서 양길의 세력은 급속도로 커져 강원도, 경기도, 황해도 일대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러나 양길은 큰 그릇이 되지 못했고 기껏해야 산적 두목 정도라고 할까요. 새 왕국에 대한 구상과 비전 같은 것은 없었서 궁예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독립을 원했고 송악(개성)에서 해상무역으로 큰 부자가 된 왕씨 호족도 궁예를 지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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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 궁예역을 받았던 탤런트 김영철님]

마침내 898년 궁예가 독립을 선언하고 많은 호족이 그를 지지하였고 양길에 밑에 있던 많은 장수들도 궁예 밑으로 많이 이동하게 됩니다. 900년 견훤이 완산주에서 후백제의 건국을 선포하게 되는데 궁예도 901년 후고구려를 선포하게 됩니다. 후삼국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것입니다. 두 나라는 서로 싸우기보다는 신라의 땅을 야금야금 빼앗는 형태였습니다. 904년 궁예가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바꾸고 또다시 911년 '태봉'으로 또 바꾸게 되는데 기록에 따르면 이때부터 폭군으로 돌변한 시기라고 합니다. 궁예가 처음에 등장했을 때 민중들은 "미륵이 나타났다!"며 반겼는데 어떤 이유에서 때문인지 미치광이 폭군으로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최근에는 고려 건국 세력이 궁예를 폭군으로 '왜곡'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태봉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면서 궁예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로 개혁을 추진했는데 왕권이 강해지면서 호족들은 반발을 되었고 신하들이 반발하니 궁예가 아주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기 시작하면서 궁예가 미치광이로 변하게 되는데 호족들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호족들은 독재자 미치광이 궁예를 제거하기로 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918년 반란은 성공을 하였고 궁예는 축출되게 됩니다. 호족들이 추대한 인물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바로 그가 태조 왕건입니다. 고려가 탄생하게 되는것입니다. 오늘은 후고구려 궁예 혁명가인가 독재인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은 태조 왕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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