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unhaesarang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성삼문의 집현전 동료이자 친구인 신숙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숙주는 뛰어난 학자이며 정치인이었습니다.
특히 국제적 감각이 탁월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변절자로 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많이 알고 있듯이 우리가 식재료로 사용하는 숙주나물이 신숙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숙주나물은 원래 이름이 녹두나물인데, 녹두나물은 금세 상해서 보관하기 어려운 나물입니다.
신숙주가 변절한 것처럼 쉽게 상하는 나물이라 해서 숙주나물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숙주가 이런 평가를 받는 서은 계유정난 이후 세조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유정난 신숙주가 직접 참여하진 않았습니다
당시 신숙주는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숙주는 뛰어난 학자였고 정치인였습니다.
성삼문보다 1년 늦게 과거에 급제했지만 세종 시절에는 종3품까지 승진합니다
일본과 중국에 걸려있는 외교 현안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등 국제적 감각이 매우 뛰어나 세조에게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신숙주가 세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수양대군이 명나라의 사은사(명나라에 은혜를 입은 데에 대한 보답으로 보내는 사절)로 가게 되었을때 동행하며 수양대군을 보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양대군과는 동갑이었으며 서로 정치적인 면에서 통했다고 합니다.
신숙주는 세조를 만나면서 초고속 승진을 했습니다.
1454년에는 도승지, 1457년 좌의정, 1462년에는 최고 벼슬인 영의정까지 오르게 됩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난후에도 예종과 성종을 모시며 영의정 벼슬을 지냈습니다.
세조는 인격이 뛰어나고 대의를 결정함에 막힘이 없는 자임을 알고 그를 옆에 두었습니다.
탁월한 지식과 국제적 감각, 그리고 뛰어난 정치력은 조선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오늘날 세조의 편에 서게 된 것을 변절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집현전 학사로 한글 창제와 여진족을 물리치고 일본과 중국의 중개무역에 능력을 발휘하며 외교 전반의 일을 담당하기도 한 조선 전기의 없어서는 안될 인물임은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아들입니다
첫째아들 향이 1450년 5대 임금 문종이 됐지만 몸이 약했고
둘때 수양대군과 셋째 안평대군이 왕이를 노린다고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문에 충신들을 물러보아 조카 단종을 지켜달라고 세종을 부탁들 합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하고 수양대군이 중국에 사은사로 다녀온 1452년 문종마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훗날 세조가 된 수양대군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기 시작합니다.
다음은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비정한 삼촌 수양대군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