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갑작스레 전화가 온 초딩친구 둘과 술을 한잔 기울이고 왔다. 어제도 기분 좋은 술을 먹고 왔기에, 내일은 야구 경기가 있기에 술을 먹지 않아야 했지만, 술을 마다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는.
어제의 술자리는 그 어떤 때 보다 달콤했다. 밤이 짧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못 다한 이야기를 놓고 가는 것이 아쉬웠다. 돌아가는 시계를 멈출 수 없기에 더 아쉬운 밤이 지나가고 계속해서 나를 붙잡는 것은 그곳에 있지 않은, 그러나 나를 계속 붙들고 있는 눈치였다.
술이라는 것이 참 다양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술은 이미 마주하기 전부터 나를 받아 줄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제든 받아주겠노라고.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술을 바라보는 눈빛이 너를 이기겠노라 하는 눈빛인가, 너를 느끼려하는 눈빛인가. 거기서부터 승부에 들어간다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가장 흔하게 먹는 술인 소주는 기분에 따라 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먹는 이의 희노애락을 다 안다는 듯이 네 가지 맛으로 마시는 이의 입을 농락한다. 기쁠 때는 달고, 화날 때는 쓰고, 슬플 때는 맵고, 줄거울 때는 시원하다. 그 맛에 취해 버저비터, 끝내기 안타를 취하려 한다면 이미 게임 끝이다.
5번까지 왔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 전에 쓴 생산적이지 않을 일기를 지우고 잠을 청할 수 있겠지만, 매일 일기를 쓰지 않는 나는 아무리 취중에 글을 써도 위에 쓴 글이 아깝다. 6번까지 가서 5번의 일기가 독립하는 맛을 느끼고 싶지만 도무지 쓸 내용이 없는 하루였다.
어제의 일기는 이 일기를 벗어나 독립하려면 쓸 수 있는 것들이지만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싶다. 이 터널 끝의 빛을 비춰줄 만남이었다. 서로가 비춰주고 비쳐줄 그런 빛이 계속해서 해와 달처럼 반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에게도 빛이 있다면.
이만 줄여야 겠다. 내일은 사회인 야구 시합이 있다. 모르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감독이다, 그런데 술을 먹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비는 그쳤다. 내일은 또 나의 술냄새를 알아채며 술 먹었냐는 팀원들의 핀잔을 들을 것이다. 반전은 술 먹은 다음 날 몸놀림이 좋다는 것. 그래서 술 먹고 오지 말라는 말림을, 팀원들에게 술먹고 왔느나는 핀잔을 듣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다가오는 술을 마다하지 않는 유일한 핑계이다.(야구가 있는 전날은 적당히 먹는다, 피해는 나한테만 있어야지 남들에게 있으면 안되는 자리이니)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라 8번으로 마무리한다. 내일은 공을 흘리지 않아야한다. 왜냐고?나는 공이 제일 많이 오는 유격수니까.ㅎㅎㅎ멋지지 않나, 유격수에 감독이라니, 슬램덩크, 상양고의 김수겸 같다, 외모는 따라갈 수 없지만 말이다.
10번까지 가고야 말겠다는 승부욕이 든다. 내가 겪은 사회인 야구는 승부와 게임의 그 사이다. 이기려는가, 즐기려는가. 아마와 프로와의 차이는 돈을 받고 하느냐, 돈을 내고 하느냐 그 차이다.
내가 유격수 포지션에서 한 게임에서 가장 많은 아웃카운트를 뽑아낸 건 10아웃이다, 병살을 포함해서.(자랑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내일 5아웃, 2안타 치면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처럼 야구일지를 쓰련다.
이미 10번까지 썼기에 지우고 싶지 않다. 이불킥을 찰지도 모르겠다. 차려거든 동쪽 방향으로 사이드 킥을 날려야 겠다. (이 말을 알아채실 선생님의 응원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