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친구에게도 못 부치는 편지, 그냥 주정뱅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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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참 특이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손등에 붙은 살갗을 바라보며 이것은 내 곁에 왜 붙어있는 존재일지 생각했다. 누구일까, 나는. 열 살이 되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 옛날 집은, 화장실이 방 옆에 없었고, 늦은 새벽에는 엄마를 깨워 복도를 끼고 건물을 돌고 계단을 올라 마당 옆 낮은 창살에 보이지도 않는 가족을 지나치고 서야 화장실을 마주했다. 문을 반쯤 열고 똥을 누거나, 오줌을 쌌던 것 같다. 화장실엔 등이 나갈 때가 많았고, 골목길 모퉁이의 가로등 불빛에 그 옛날 모자이크 같던 유리창에 기댄 빛 너머로 엄마의 어렴풋한 형체만 그리며 '거기 그대로 있지?'만 조용히 물으며 배설했던 것 같다.

그 후로 아빠에게 계단 내려가는 집 말고 계단 올라가는 집으로 이사가자며 졸랐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똥 누던 얘기를 그럴 싸 하게 포장하려다 눈가가 다시 건조해지고, 쓰고 싶었던 글이 망설여졌다. 뱉어내면 그저 다 부질 없는 이야기고, 그저 부질 없었다고 상처가 붙은 혹을 붙여 돌아오니까. 그럴때면 더 큰 상처를 스스로 내고 있는 걸 느끼는데, 들어주는 이는 없고, 그래서 가까운데다 이야기를 못 하고 먼 곳 같은 여기에 내 뱉는 것 같다.

몇 일 전, 뭐해? 살아있니, 잘 지내니 라는 연락이 대학 친구로부터 왔다. 친구 이름이 뜨는 폰의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저 흘려보내고 있는 나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곧바로 톡이 오고 1을 몇 일 동안 지울 수 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비슷한 글이 이곳에 올라왔다.

그 글을 읽으며 조금의 위로와, 또 다르게 느끼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느낌이 들었다. 설명, 그 핑계조차 이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런 것이다라는 체념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렇게 넘겨버리는 게 쓸데 없는 혹을 달지 않을 것이니까. 그 혹에는 왜 날 찾아?라는 내가 넘겨 짚는 좋은 생각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니까. 왜 날 찾냐의 물음, 그 문장 앞의 붙일 나의 마음에는 '아직도'와 '그래도'가 왔다 갔다 하니까.

그 거꾸로 된 마음을 또 다른 몇 일 전에 느끼면서, 그런 마음이겠구나 했다. 나도 같은 물음을 누군가에게 던졌으니까.

그저 보이지 않는 내 혹에 담긴 마음들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또 다른 혹을 덧붙였다. 심술보마냥 양쪽에 혹이 달린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은 피해있으면 되니까. 근데 혹이 길었나, 커졌나, 보고 싶지 않아도 눈알을 돌리면 보이니까, 보여주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데, 조금은 들키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드니 좀 처럼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어둠 속으로 스스로 들어 간 것 같지 않았던 것 같지만, 지나고 나니 어둠 속으로 스스로 들어 온 거 같은 시절이 계속 되고 있었다. 그렇게 피하고 싶은 혹 같은 핑계를 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설명 할 수도 없는 핑계로 퉁 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는 걸 어떡해.

마음 속에 역설이 난무하다. 뱉고 싶고, 토하고 싶고 그렇지만 드러운 바이러스를 내 뱉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다.

어릴 때 술 먹고 토하는 거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문을 꽁꽁 잠그고 있었는데, 언젠가 니가 내가 닫지 못 한 문을 열고 들어오고, 등을 두드려 주는 니 바지 밑단에 토를 했을 때 얼마나 창피했는데 말이지.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는데, 창피하다는 건 정말 이기적인 마음이다. 그 창피는 나밖에 모르는 거니까.

결혼을 앞두고 나의 답장이 없다며 기다리는 너에게 줄 게 없다, 어둠을 줄 수는 없으니까.
나의 진심을 알아주리라는 이기적인 마음밖에.

별 것도 아닌 걸로 요새는 마음의 상처가 생긴다.
‘마상’ 줄거면 ‘문상’이라도 줘라 만원에 맥주라도 바꿔 먹게 이 자식들아, 를 외치고 싶은 요즘이다.

마음의 상처도 스스로 내는 거지만 말이야.

그러니 이기적인 나를 그냥 기다리라는 말 뿐이고, 그 것 조차 이기적인 걸 아니까 잠수부가 되었다고 말 도 못하는 것이라고 말 도 못하는 것이라 그냥 알아 두기를 바랄 뿐이라고.


마음의 빚이 그 언젠가는 빛이 된다는 것도 이제는 부담이다. 그 언제를 알 수가 없으니까


매 번 주사를 이곳에 남기고 갑니다.
한 동안 듣지 않고 뱉고만 가네요.

[무량광, 無量光]

한량없이 큰 광명, 또는 헤아릴 수 없는 광명이라는 뜻. 큰 깨달음의 지혜광명으로 진리를 깨친 큰 성인의 지혜광명은 그 빛이 크게 밝아서 이 세상을 다 비추고, 아무리 오래 비추어도 다함이 없기 때문에 무량광이라 한다. 싼스끄리뜨로 아미타바(Amitābha). 12광의 하나로 불타의 몸에서 나오는 무량의 빛. 아미타불의 광명은 헤아릴 수 없다는 데서 나온 말로서 그 공덕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에 이르도록 다함이 없기 때문에 무량광이라고 한다.

eternalight에서 스스로
이 터널 끝에 빛,
이란 의미를 주었는데,

무량광이라는 해석도 너무나 큰 빚과 같은 빛이다.


그런데 큰 광명은 없고, 또 다른 의미의 한량만이 남았다.

보이지도 않는, 가리워진 길 같은 빛을 볼 게 아니고 어둠부터 거두고 빛을 보아야 하는데 너무 큰 욕심만 부려서 이 모양 이 꼴인 것 같다. 그래서 매일 고꾸라진다.

고꾸라지고, 꿈속에서 꿈을 보지만 이내 사라지니 배움 없이 또 고꾸라진다.

지금의 내 마음이 꼰대가 되어 나중의 나를 바꿀 수 있기를.
아니 예전에 곁에 있던 내 안의 꼰대를 찾을 수만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바란다고 이뤄지냐 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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