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결국은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내려왔었나 보다.

eternalight(62)
Published in
#kr
Words
265
Reading
2 min
Listen
Play
7y

70616025-BDB0-499B-B0A8-1E7404714BAF.jpeg

어제 오늘 외갓집에서 하루 지내고 올라가는 길이다. 외할머니와 단둘이 하루를 보내고 가는게 오랜만 일까. 처음 일까.

어제부터 할머니는 메주를 쑤신다 했다. 손주 서울 밥 먹이고 서울 올려 보내고 댕신 혼자 쑤신다했다. 어찌 그냥 올라갈까. 아무리 콩 두되 밖에 안 되는 양이지만 말이다.

‘어여 올라가그라 할머니 혼자 하면 됭께’
‘메주만 삶고 올라갈게요’
‘그럴려? 그래라 그럼’
(똑같은 대화의 반복 수십번)
‘들어가 계셔요. 추웅께’

DFDD2142-CE62-4483-ABBC-25593E71AEAB.jpeg

불을 때고, 땔감을 계속 넣고 끓어오르는 솥뚜껑에 물을 조금 붓고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한다. 냥이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네.

‘할머니, 이걸 혼자 어떻게 다 하신다 그러셨어요’
‘다 혀, 할머니 혼자도 다 할 수있어. 그만 올라가그라’
‘이것만 하고 올라 갈게요’

밥을 먹고 설거지를 다 마치니 할머니가 밖에서 절구에 콩을 찢고 계신다.
‘할머니 두시간 있다 하신다면서요’
‘금방혀 어여 올라가’
‘서울 가는 차 겁나 많어요’

B10E7CBA-5B3A-46F1-AD5D-9AFB04839CA1.jpeg

콩을 찢다보니 생각의 반복이 계속됐다. 어찌 이걸 혼자 다 하신다고 그러셨지. 중간에 전화온 큰외숙모도 이왕 하는 거 다 도와 드리고 가라 하신다. 외숙모 주말마다 내려와 고생이 많으시네요, 할머니 고집이 장난아니어요. 할머니 잘 하시디. 잘 몰라도 잘 보고 해. 예전같지 않으시니까.

E201BF7B-EEC5-47A5-87E5-E0BCE4B143E5.jpeg

짠. 절구통이랑 솥 씻고 정리하고 오니 벌써 다 빚어 놓으셨네.

할머니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둘만의 추억을 빚고 가는 거 같아 버스타러 가는 길에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나중에라도 할머니를 추억할 장면들이 하나 더 생겼구나.

할머니 지금 같이만 건강하게 지내주세요. 오래오래라는 말은 붙이지 못 하겠다. 할머니 돌봐주시는 큰외삼촌 내외 두분은 엊그제 서로 입원과 퇴원의 바톤을 주고 받으셨다. 퇴원하신 외숙모는 짧게나마 뵙고 왔는데 외삼촌은 못 뵙고 올라가네. ‘외삼촌이 해야 할 걸 니가 다 했네. 잘했다.’ ‘건강하세요. 또 올게요’

그새 광주에 도착했다. 서울가는 버스 갈아타고 엄마 보러 가야겠다. 할머니는 오늘 마을회관에 가실 수 있었을까. 니 덕에 편히 끝냈다. 그 한마디에 다 담겨있겠지.

[별담수첩] 결국은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내려왔었나 보다.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