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지 10년도 넘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양장본을 감싼 겉표지마저 닳은 흔적도 없이 깨끗하다. 1,2권으로 이뤄어졌던 전집에, 읽기 벅차 보였을 평전은 제외한 채 이 책만 골라 샀을 텐데, 수학의 정석의 집합페이지만큼 조차도 접힌 흔적이 없다니, 그럼 그렇겠지라며 끌끌 찰 혀도 주인 보기가 부끄럽다.
활자로 접하는 게 귀찮고 벅찼던 것인지, 영화로 만들어진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로 그 청년을 만났다. 벅차고, 벅찼다.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고, 감동하기에는 정말 벅찼다. 어이, 이 봐라는 의미의 Che, 게바라가 아닌 아르네스토와 그 친구 알베르토 이야기가 그랬다. 잘 알지도 못하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동경했지만, 왜 좋아하냐라고 묻는 그 이유에는 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떤 다짐을 하고 떠났을까. 무슨 거창한 것을 얻어오리라 여기며 떠났을까. 그 어떤 다짐이나 이유를 댈 것 없이 떠났을 여행의 길이 지나고 나서 자신이 앞으로 걸어갈 길의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스페인 하숙'을 보다 말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방송 시작 시간도 놓쳤고, 갑자기 어떤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득,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구절이었을 까싶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 순례길을 떠났을까, 얻고자 시작한 그 길의 끝에서 얻은 것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그냥, 그 말이 떠올랐다.
근데, 그렇게 고꾸라졌던 포데로사는 왜 안 쓰러지는 것일까. 어릴 때 친구가 빌려줘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길에서 깔았던 데이스타는 폐차가 되었는데 말이다.
그냥, 문득 나도 스페인 하숙을 보다 문득 떠오른 사소한 글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오랜만에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켜놓고 글을 쓴다.
그냥, 문득 머릿속에 떠올린 내일의 오늘이 현실이 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라는 걸 느낀다. 어제가 될 지금을 느낄 내일은 어떨지, 지금을 느끼는 내일의 감정은 어떨지를 영화 속 두 주인공은 느끼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둘의 여정의 발이 되어주었던 포데로사는 이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게되었다.
그럼에도 달린다.
둘은 3,573km를 달려왔다.
나도 마저 영화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