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그 시절 놓친 영화, 제8요일. 1996년 作. 사랑 받을 준비, 선물 받을 자격.

eternalight(62)
Published in
#kr
Words
838
Reading
4 min
9y
Listen to this post
~6 min

그때, 1996년.


movie_image (9).jpg

세상의 연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만들어 나가는 것일까. 삶의 시작의 연은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잉태한 그 둘은 자신들이 이은 선의 맞은편에 점 하나를 찍어놓고 그 둘의 바람이 그려가는 선이 온전히 그 점을 향해 가서 만나기를 기원한다.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 둘은 서로를 이은 선과 같은 길이의 선이 나에게로 향하고, 태어난 나를 포함한 우리 셋, 서로를 바라보는 꼭지의 각도가 일치될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정확한 삼각의 균형을 이루기란 쉽지가 않다. 반듯함을 시샘하는 무리들은 각자의 내부에도 있으며 외부에도 있다. 각자의 점은 그들에 의해 당겨지고 밀어진다. 바랐고, 바라며, 바라려 했던, 점들의 위치는 시샘하던 무리들에 의해 각자가 서고자 했던 점의 자리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신을 원망한다.

이미 그려놓은 선을 벗어나 그려지는 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벗어난 선의 각도를 맞추기 위해 서있던 각자의 점의 위치를 옮길 자격이 되어있는지는 새로운 연을 맞이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준비이자 자격이다.


반듯한 삼각의 중심을 잡고 돌려보자, 무엇이 보이나

movie_image (1).jpg

그 남자, 아리가 하지 못했던 것을 그 남자, 조지는 해내었다. 조지를 포함한 그들의 입장에서 아리를 포함한 우리를 본다면, 우리는 그저 일반적인 일반인에 불과하다. 아리는 신께서 주신 반듯한 삼각의 꼭지를 유지하지 못하며 이탈했고, 우리 눈에는 삐뚤었을 삼각의 꼭지에 태어난 조지는 아리의 삐뚤어진 삼각의 꼭지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마치, 쉬고 있을 신을 대신하여.


조지가 말한 여덟 번째 날

첫째 날
신은 태양을 만들었다.
태양은 눈 부시다.
그 다음엔 땅을 만들었다.

둘째 날
신은 바다를 만들었다.
바다는 발을 적신다.
바람이 간지럼을 태운다.

셋째 날
신은 레코드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영어를 한다.
나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몽골이 아닐까 생각한다.

넷째 날
신은 텔레비전을 만들었다.

다섯째 날
신은 풀을 만들었다.
풀은 자를 때 운다.
그럴 땐 다정한 말로 달래 줘야 한다.
나무를 만지면...나무가 된다.
눈을 감으면...개미가 된다.

여섯째 날
신은 인간을 만들었다.
사람의 피부색은 다양하다.

신은 일요일엔 쉬었다.
그게 일곱째 날이다.


때로는 입은 닫고 귀를 열어야 한다.

movie_image (4).jpg

입으로 먹고사는 아리는 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똑같이 들려오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혼자 살고 있다. 둥지 안에서 아이들에게 지저귀어야 했을 목소리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물어다 줄 먹이를 찾아 밖으로 돌았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사랑이 고픈 새끼들은 아비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아비새가 밖에 지은 둥지를 찾았지만 거기에도 아비새는 없다.

아비새가 물어다 줄 것은 먹이만이 아니었다.


개가 부딪혔다.

movie_image (2).jpg

아리는 둥지에서 내쫓긴 건 자신의 탓이 아니라 여기며 휴가를 내가 회사를 나선다. 비 오는 밤 길에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아리의 차에 개가 부딪히고 만다. 개의 주인인지 알 수 없는 한 사내가 아리 앞에 서있다. 아리에겐 한꺼번에 개 세 마리가 다가왔고, 그 중 두 마리는 아리 자신이 사내에게서 불러낸 두 마리였다. 편견과 선입견을 몰고온 그 사내를 아리는 떨쳐내려 한다.


둥지밖에서 만난 친구

movie_image (3).jpg

둥지를 찾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던 아리는 똑같은 처지의 조지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조지에겐 돌아가신 어미가 있었고, 가엾지만 동생 돌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누이가 있다. 먼저 간 어미는 누이에게 조지를 맡겼지만, 누이는 어미처럼 살고 싶지 않다며, 동생을 떠나보냈다. 그렇게 다시 찾아간 누이의 집에서 조지는 다시 쫓겨난다. 그 곁에 아리가 있다. 반겨주지 않는 둥지가 있는 둘은 그렇게 둥지밖에서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의 생일을 챙겨주려 아이들이 있는 둥지로 찾아간 아리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또다시 예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 두 마리를 끌고 온 조지는 가족들에게 몹쓸 짓을 하던 개, 아리를 집에서 끌어냈다. 조지는 미친개처럼 날뛰던 아리를 꾸짖지 않는다. 다만 함께 할 뿐이다.

그런 조지를 친구들 곁에 두고 아리는 떠난다. 자신은 누구를 돌볼 처지가 되지 못한다며.


먹이 대신 들고 간 선물

movie_image (6).jpg

영화여서 유쾌했지만, 현실이었으면 아찔했을 방법으로 조지는 친구들과 함께 아리에게 간다. 조지는 잊지 않고 있었다, 지난번 개처럼 쫓겨난 집에서 아리의 아이들이 자신의 손바닥에 적어준 날짜를. 그날은 아리의 첫째 아이 생일이었다. 아찔한 방법으로 탈취한 밴에 조지의 친구들이 함께 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조지가 아리를 위로하던 문이 닫힌 놀이공원.

놀이공원에서 얼마 멀지 않은 해변가에 아이들이 있는 둥지가 있다. 개점휴업한 놀이공원에서 조지와 아리는 폭죽을 훔쳐 와 터뜨린다. 아닌 밤중에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은 아이들에게는 둘 도 없는 선물이 되었고, 오밤중에 터진 폭죽으로 인한 신고는 조지와 친구들을 곤경에 빠트린다. 그 사이엔 조지가 사랑하는 나탈리도 있었다.

아리에게는 선물이었을 그것이, 조지에게는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아리에게는 돌아갈 둥지가 있지만, 조지에게는 없다. 아리에게는 다가올 내일이 있지만, 조지는 세상의 시간과는 다를 제8요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천국이란 이름의 간판을 단 놀이공원에서 마치 신이 주고 간 듯한 선물을 조지는 아리에게 전해주었지만, 자신에게는 그 어떠한 것도 없다. 아리는 그러한 신을 탓하지 않는다. 여덟 번째 날에 아리는 남들은 보이지 않는 엄마를 만났다. 왜 나를 이렇게 낳았느냐 투정하지도 않는다.


아리가 들은 여덟 째 날.

movie_image (7).jpg

첫째 날
신은 태양을 만들었다.
태양은 눈 부시다.

둘째 날
신은 바다를 만들었다.
바다는 발을 적신다.
바람이 간지럼을 태운다.

셋째 날
신은 풀을 만들었다.
풀은 자를 때 운다.
그럴 땐 다정한 말로 달래 줘야 한다.
나무를 만지면 나무가 된다.

넷째 날
신은 소를 만들었다.
소는 숨 쉴 때 뜨거운 김이 나온다.

다섯째 날
신은 비행기를 만들었다.
안 타면 날아가는 게 보인다.

여섯째 날
신은 인간을 만들었다.
남자, 여자, 아이들.
뽀뽀할 때 따갑지 않아서 난 여자와 아이들이 좋다.

일곱째 날, 쉬기 위해 신은 구름을 만들었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구름 속에서 이야기가 보인다.

빠진 것이 없나 생각한 뒤
여덟째 날 신은 조지를 만들었는데
보기에 참 좋았더라.


신은 원을 그려주지 않는다.

삐뚤어져 만들어진 삼각의 균형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의 몫이며
반듯하게 만들어진 삼각의 균형을 깨는 것도 인간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같은 각도, 같은 길이의 균형을 이뤘을 때, 삼각의 중점을 돌리면 비로소 반듯한 원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