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유나이티드의 착각의 늪.

eternalight(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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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림_착각의_늪4.jpg

두달여 만에 머리를 잘랐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은 머리를 기르는 것이냐, 잘 어울린다, 좀 잘라라. 다양한 반응이 온다. 기르려던 머리도 아니고 스타일 좀 내보겠다고 기른 것도 아니다. 길러진 머리를 자연스럽게 넘기다 보니, 머리카락들은 원래 넘어가던 비율을 잊은 채 반쪽으로 나뉘었다.

결국은 귀찮아서 였다. 머리를 자르겠다고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고, 거울 앞 의자에 앉아 이렇게 저렇게 잘라주세요, 아니 일단 머리를 자르러 가는 것이 귀찮았던 것이다.

모두가 그럴지도 모른다.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찾는 것, 마음에 맞는 선생님을 찾는 것, 또 익숙해 지면 쉽게 옮길 수 없다는 것. 대학때 이런것에 대한 이론을 배웠는데...까먹었다.

잘리는 머리결을 보며 거울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안하다. 나는 원래 의자에 앉아 이렇쿵 저러쿵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다듬어 주세요' 한마디면 끝이 난다. 그래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결과물이 나오는 곳을 찾아다니며, 한 곳만 찾아 별일이 없으면 오래 다닌다. 염색도 해본 적이 없으며, 퍼머도 해본 적이 없다. 오로지 다듬는데에서 끝이 나다가, 이왕 길러진 머리 춥기도 하니 길러 볼 참으로 길렀던 것이다. 사실 머리 말리는 것이 더 귀찮기도 하다.


집에 가려던 길에, 감정의 변화가 있어 머리를 자른 것도 아닌데, 감상에 젖고 싶었다. 혼자 코인노래방을 찾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많이도 갔다. 기계도 가려가며 방을 들어갔다. 재수를 하며
노량진에 있을 때에도 그렇게 많이 갔다. 그 때 당시 첫 곡은 무조건 3800. 너나 할 것 없이 마이크를 잡으려 혈안이다. 누른 사람이 임자가 될 수 없다. 올라가지도 않는 음을 억지로 질러대는 꼬라지를 보면 마이크를 뺏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후렴부터 이어간다, 처음부터~너란 존재는...점수가 잘 나오면 내 탓이고, 점수가 안나오면 너탓이다.

책부터 펼쳐 보던 그때와는 다르다. 뒷 페이지부터 찾던 시절은 아주 오래되었다. 맨 정신에 찾은 것도 오랜만이다. 당당하게 첫 곡을 선택한다. 동계훈련없이 시즌을 맞이하는 것처럼 목젖은 맥아리 없이 춤을 춘다.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당연히 음도 춤을 춘다. 아, 옛날이여.

그래도 첫 곡을 무사히 마치었다. 다음 노래를 선곡한다. 예전을 떠올리며, 그래 이 노래는 충분해, 했지만...가냘프게 떨리는 목젖이 안타깝다.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너 참, 대단했구나.'하며 종료 버튼을 누른다.


리즈_1.PNG

나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리즈 시절을 모른다. 그 팀은 한 때 요새 흔히들 말하는 리즈시절이 있었다. 치열한 우승다툼에서 우승을 했고, 저 멀리 사라져 갔다. 한마디로 '리즈시절'이었다. 한 때는 잘 올라가고, 또 잘 부르던 노래가 이제는 음이 춤을 추는 지경에 이르렀다. 옆 방에 들릴까 겁이나 마지막곡은 종료버튼을 누르며, 옛날을 생각했다.

재작년부터 사회인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시절엔 불 같은 강속구를 날렸다. 배트를 휘두르면 여지 없이 저멀리 날라갔다. 물론, 편집된 나의 기억일 수 있다. 그렇게 수년이 흘러 옛날을 생각하며 시작한 그것은 만만치가 않았다. 불 같던 강속구는 정처없고 힘없이 날라갔고, 날아오는 공에 휘두른 배트는 아무런 요동없이 돌아갔다. 앞으로 날아 갈 것 같던 공은 비웃기라도 하듯 포수 미트 속에 빨려들어갔다.


막힘없이 올라가는 고음을 받혀주는 목젖은 이제 없다. 거침없이 포수미트로 꽂아내던 어께도 이제는 굳어있다. 모두가 옛날이다. 흘러간 세월은 생각치 않고 온전히 기다려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가끔씩이라도 깨워 일으킬 수 있는 근육이라면, 아프지도 않다. 이미 근육의 기억세포는 그 옛날을 잊은지 오래다.

언제까지 대단치도 않았던 옛날을 생각하며 살 것인지, 깨우려고는 하는지, 좀 처럼 깨지 않는 그 무엇이 야속한 것인지, 아니면 일어나기를 포기한 것인지 모르겠다.


올라가지 않던 그 노래의 구절이 떠오른다.

그대는 어디에.

리즈 유나이티드이 승격이 빠를 것인가, 나의 승격이 빠를 것인가.
일단 늪에서 헤어나와야 한다.

리즈유나이티드의 착각의 늪.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