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내 안에는 무엇이 끓어올랐을까를 생각하다가 내가 아닌 타인의 그것에는 무엇이 끓어올랐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엇을 끓인 용기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그 안에 담긴 것은 무엇이 더 맛있을까를 생각했다.
라면이 맛있을까, 설렁탕이 맛있을까.
바로 어떤 머시기가 더 맛있는 것인지 고를 수 없었고, 그것들을 끓인 용기들을 생각해봤다.
냄비로 끓인 라면은 맛있고, 가마솥에다 끓인 설렁탕은 맛있는데 우열을 따질 수 있을까를 또다시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 끓고 끓었던 생각의 끓음을 버티게 하고 더 맛있다고 혀가 아닌 뇌, 그것도 아닌 가슴이 끓는 것이라면 설렁탕의 솥이 맛이 더 좋다고 느끼는 것이 타당한데, 라면에 끓인 냄비를 버릴 수가 없다. 영화는 이미 끝이 났고, 영화를 본 나는 내일 끓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영화를 보다가 제목을 떠올리며, 다른 영화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영화'제보자'가 개봉된 시점과, '내부자들'이 개봉된 때는 언제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으로 픽션을 가미한 영화와,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 실화처럼 되어버려서 후속편 만들기를 주저한 영화.
그 시점의 정권은 누구일까를 생각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의 시대.
그것이 떠오른 순간, 우리는 냄비의 후손인가, 솥의 후손인가를 떠올렸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박씨 부녀가 다 말아먹고, 그시대를 아베가 이용해 먹고 있다.
오래도록 전해오는 '귀가 얇다'라는 그 말처럼 얼굴 옆에 눈에 보이지도 않게 붙은 귀는 냄비일까.
또 눈에 보이지도 않게 붙은 입은 역시나 냄비일까.
근데 나는 왜 영화를 보면서 '솥'을 떠올릴까를 생각했다.
서서히 뜨거워지고, 소리 없이 맹렬히 끓어대는 그 솥을.
'냄비'와 '솥'을 떠올리며 영화를 보면서도,
'참'이라는 단어를 어디에 붙여야 하는지 생각했다.
드러나는 '참'이라는 접미사를 붙일 우두머리라고 불리는 그 머시기들과,
드러나지 않는 우리 민중들은 '참'이라는 접미사를 두고 싸우는 것인 아닌지.
아, 백이강으로 분 판 조정석의 연설이 기깔났는데, 원본을 찾을 수가 없네.
궁금한 사람들은 드라마 '녹두꽃' 정주행 고고.
'이몽'도 고고
'이몽'을 제대로 본다면, 김구 선생, 약산 김원봉과 같이 드러나지 않는, 드라마 ‘녹두꽃’과 같이 인위적으로 심은 녹두꽃이 아닌 진짜 녹두를 볼 것이다. 드라마 '정도전'의 작가 정현민의 작품 '녹두꽃'은 기대한 바였고, 드라마'이몽'의 작가와 연출은 다음에도 주목할 것이다. 아, 그리고 신경수pd님 ‘샘이 깊은 물’ 언제 만들어 줄꺼오. ‘아스달 연대기’ 망한 거 같은데 김영현,박상연 작가님들 다시 꺼내 주세요. ‘뿌나’’육룡이 나르샤’ 그리고 피날레 3부작 완성해야지요. 수양일까, 포은일까 궁금하다. 삼봉일까.
드라마 '녹두꽃'은 전봉준을 주인공을 내세운 것이 아닌 상놈, '거시기'에서 '民主'으로 가려는 백이강과 중인에서 자신도 그리지 못하는 그 '무엇'으로 가려는 백이현의 내면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예전에 내 안의 사전을 쓰고 있다는 것으로 친구와 술자리에서 작은 전쟁을 일으켰다.
'개돼지'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똑똑한가, 써놓고도 어감이 안 좋고, 느낌이 거시기한 것은
아직도, 그놈들이 부르는 '개돼지'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보자, 영화속 배우 권해효가 읇은 대사가 떠오른다.
'진실이 국익보다 우선이지'
이번 '일제 불매 운동'을 보며 기억 속에 전에는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이 떠올랐는데, 우리가 떠올려야 하는 역사는 '국채 보상 운동'의 정신을 우리가 보이지 않는 '솥'에 담고 끓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어떤민족입니까?'라는 카피가 부끄럽지 않게,
그 기업은 경영을 잘 하길 바라며.
어플로 후기보고 중국집, 치킨집, 피자집 사장님들 수수료 안 채가게, 국번으로 주문시키는 나를 스스로 응원하며, 그 사장님들도 알아주기를 바라며.
영화, <제보자들>과는 별개의 감상평을 남긴다, 결국 별개는 아닐지라도.
오타고치고, 첨언하다 정작 중요한 마지막말을 잊어버렸다, 잃어버렸을까.
나도 끓다 말았나보다, 나도 역시 냄비인가보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것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식기 전에 떠오른 시.
공부 좀 열씨미 할 걸, 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해야한다.
그 놈들 사전의 '개돼지'를 나의 사전에 개돼지를 친구로 만들려면.
'개돼지' 어감이 안 좋다.
거기에, 그 뜻대로 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적을 사전은 우리에 달렸다.
우리에 갇힐 것인가, 우리를 다시 만들 것인가.
'우리'라는 단어도 다시 사전에 적어여하나.
예전에 힐링캠프에 나온 한석규 배우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 영상을 찾으려 했는데 없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 문명을 만든 인간은 더 편해지고, 풍족해졌지만 과연 그것이 없던 때보다 행복한가.
이런 말을 했었더랬다.
다시 떠올리고 내가 쓴다면 우리라는 단어에는 복잡하지 않게,
멍멍, 꿀꿀로도 적히면 좋겠다.
때 묻지 않은 것 처럼 쓰고 말하고 소통하면서.
※ The following part is needed to put filled in and added to your text, as otherwise it will not be included later on phase II on Tripl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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