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제 한 달 뒤면 30여 년을 함께했던 우리 집을 떠나 나에게 새로운 남동생을 만들어주고 그와 함께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들어간다. 벌써부터 눈에 눈물이 고인다. 오늘 그녀와 히든싱어 왕중왕 편 프리뷰를 보았다. 벌써 13주가 지났나. 다음 주부터 펼쳐질 13인의 면면을 확인하며 내 동생과 대화를 나눴다.
'몇번이였지?' '2번 아니야?' '몰라, 그걸 어떻게 지금까지 기억하냐.' '와, 쟤 기억나냐?' '그때 너 자고 있어서 못 봤나?'
13인이 왕중왕 편을 펼치려면, 방송국 놈들은 분량 뽑으려고 못해도 2주는 방영할 것이다. 프리뷰를 보며 그 생방송을 동생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나는 자상한 오빠처럼 보이려나? 절대 아니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두 살 터울의 우리는 어릴 때 많이도 싸웠다.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이기는 싸움을 했는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겹치던 그 무렵부터 우리 사이는 멀어졌던 것 같다, 내 기억에는. 전날 치고받고 싸우고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놀다가 또 싸우는 그 시절은 각자의 중학교 2학년 전후로 무기력하게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3년은 6년이 되고, 9년이 되고 더더욱 길어졌다.
이제 남편이 될 그놈을 동생이 남친으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3년 전 외숙모네 집 가는 차 안에서 나와 단둘이 있던 엄마에게 들었다. 물론 나는 그전에 눈치는 채고 있었다. 모르는 놈이 나의 페이스북에 알 수도 있는 친구로 떴고, 그 중간에 있던 사람이 내 동생이었으니. 음,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나는 그 놈을 가족이 될 상으로 본 것일까.
그렇게 1년을 서로 만나고, 작년에 나에게 녀석은 만남을 청해왔다. 물론 내 동생과 함께. 내 동생은 나를 어찌 설명한 것일까. 녀석은 잔뜩 각이 잡힌 채 나와 마주했다. 이러면 내가 곤란한데...서로 사는 동네도 가까우니 먼 곳을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밤이 길어질 텐데 멀어지면 곤란하니, 내가 아는 가까운 맛집으로 인도했다.
서먹서먹한 남자 둘의 대화는 운동 이야기, 군대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로 이어지니 대화도 술술 풀리고 술도 술술 들어갔다. 내 동생에게 내가 새로 맞이 할 남동생이 나온 부대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슬슬 분위기를 그쪽으로 이끌어 갔다. 빨간색에 방패 모양의 부대 마크는 군대 나온 남자들은 다 알 것이다. '세글자' 경례 구호. '이야, 그 부대 수색대대를 나왔어?' '나도 뒤지지 않아. 너 70명이서 한 방에서 자봤어? ㅠㅠ눈 제대로 오면 무릎 넘어까지 찬다?'
○○아, 인제 절대 안 신남. 여기서 더 들어가면 원통해서 못 산다는데 나는 거기서도 삼십분을 들어갔어...너 유격 조교 해봤다고? 형 유격 세 번 받았다...
내 말을 받아준다. 통과! 그렇게 우리 둘, 나는 동생을 보내고 매제는 여친을 보내고 3차까지 달렸다.
매제 될 놈은 보름 뒤 나와 둘이 만날 것을 원했다. 그래 나도 오랜만에 니네 동네 가보자 했다. 어릴 때 많이도 놀러 갔던 그곳으로. 그날 동생은 처음 만날 때만 각을 잡고 나와 술잔을 나누며 식구가 되었다. 4차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술자리에선 피를 나눈 형제와 다름없었다.
김혜자와 최진실이 나오는 1999년의 영화. 이미 오래전부터 찜 해놓은 영화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니 재생 버튼을 누르기가 겁이 났다. 너무도 울 것 같아서.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이미 영화가 그려졌다. 그때 당시 김혜자와 최진실의 캐릭터면 뻔하고 뻔한 영화의 전개일 것이다. 그래서 더 멀리했다.
김혜자와 최진실이 그리는 영화 속 캐릭터는 전혀 우리집 모녀와는 부합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모녀와 딸 사이도 이해를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조금은 부합될지도 모를 그 관계의 그림이 나의 눈물샘과 맞닿을 것 같아 영화를 보기도 전에 슬퍼짐을 앞 세웠다. 동생을 보내 놓고 나서 혼자 눈물지어야겠다.
오늘은 결혼식을 앞두고 우리 집 모녀가 피부관리실을 다녀왔다. 엄마는 신세계를 경험했다며 좋아하다가, 이제 딸을 떠나보낼 날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곤 아쉬워했다. 나도 받아보란다. 그것이 양도가 되느냐 물었더니 가족도 받을 수 있단다. 내 옆에 있는 여인네들은 상상도 하고 있지 않은데, 그 둘을 옆에 두고 나는 매제 될 놈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을 그림을 상상했다. 끔찍했다.
결혼 준비가 힘들고 힘들다는 것을 건너서만 들었지, 옆에서 바로 보니 조금은 느껴진다. 동생이 사서 걱정하는 것이 많아 보인다. 둘만의 결혼식이 아니기에 둘을 넘어 선 이해당사자들이 그리는 그림이 조금은 어긋나는 면도 옆에서 보인다. 맞장구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처음이니까 당연히 모를 것이다.
동생이 면세점에서 선물 사다 줄 테니 품목을 고르라 했다. 나는 필요한 것이 생각나지를 않았다. 안 사줘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히든싱어 왕중왕전 프리뷰가 끝이 날 무렵, 밖에 나가 구름과자와 함께 산책할 생각을 하니 떠올랐다. 아이코스 사다 주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그나저나 나는 동생이 무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남은 한 달, 밥 한끼 할 시간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