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늦은 나이에 미국진출하며 그가 남긴 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남들이 뭐라 말하든 그는 여전히 새로운 출발선에서 스파이크를 조이고 자신의 공을 뿌리고 있다.

eternalight(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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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우리형은 호우형만은 아니다. no. 7이 새겨진 맨유 유니폼을 입고 올드 트래포트를 누비던 호날두를 만나기 훨씬 전, 허름한 광주무등야구장에서 no.37을 뒤에 새기고 팀의 뒷문을 지키던 우리형, 임창용을 먼저 만났었다.

22년 전 그때 싸인볼

가짜가 아닌 진짜로 받아야 하는데...


그는 몰락하던 타이거즈 왕조를 떠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 후, 2년 전 다시 고향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3998일 만에 5이닝 동안 2안타 4볼넷 6탈삼진 1실점으로 선발승을 따냈다. 지난 20여 년의 커리어 동안 선발 128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했지만 빨간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는 첫 선발승이었다. 감격스러울 만도 한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시크함, 그 감격을 나에게로 가볍게 던져버린다.

선동열이 일본으로 건너간 후 타이거즈의 마무리 투수는 김정수를 거쳐 임창용에게로 넘어갔었다. 역동적인 투구폼에서 나오는 공은 포수에게 그대로 가는 법이 없었다. 옆구리에서 나온 공은 S자를 그리며 포수 미트에 꽂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패스트볼을 뱀직구라 불렀다.

공의 위력도 대단했지만 타자를 상대하는 배짱이 더 두둑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의 볼끝은 자신이 보기에도 대단했나 보다. 상대하는 타자가 누군지보다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으로 볼을 던졌다. 그렇게 만 20살의 임창용은 타이거즈의 뒷문을 책임지며 우승에도 일조했다.

어려운 팀의 사정으로 삼성으로 이적한 뒤 에는 전천후 투수로 활약했다. 선발, 중간, 마무리를 오가며 팀의 마운드를 이끌었다. 당시 그의 별명은 '애니콜' 지금이라면 그때의 감독은 매장당해도 싸다. 선수를 그렇게나 혹사시켰는데 지금도 뛰고 있는 거 보면 대단하다. 오늘 선발승은 송진우 다음 역대 최고령 기록이다.

혹사 때문인지 팔꿈치에 무리가 갔다. 수술을 해야했다. 선수는 언제든 부르면 마운드 위에 올랐는데 팀은 망가진 선수를 버렸다. 결국 수술대 위에 오르고 재활을 마친 후 그가 선택한 길은 일본 진출이었다. 이미 전성기가 지난 걸로 보이는 선수를 선뜻 받아주는 팀은 없었다. 그에게 연봉은 중요치 않았다. 그를 믿어준 팀이 나타났고, 선수는 믿음에 보답했다. 2년 뒤 최고 연봉을 받게 되었고 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똑같은 부상을 당했다.

사람들이 37살 투수를 바라보며 던지는 물음의 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한국으로의 복귀, 그마저도 힘들다며 은퇴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남들의 시선이 아래로 향할 때 그의 눈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였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가 미국에서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선글라스를 벗고 구장을 바라보며) 제가 살아보니까 인생에서 속도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언제가 됐든 이루고 싶은 건 이룰 수 있더라고요. 그러려면 인생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방향만 올바르고, 그 길로만 꾸준히 나간다면 느려도 언젠간 원하는 장소까지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보세요. 저 지금 미국에 있잖아요(웃음)."

그를 바라보는 모두가 도전이라 했지만 그는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다. 그의 새로운 시작은 전처럼 수월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에서 쌓은 커리어는 그 자신에게도 그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연장선상이 아닌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다시 볼을 던졌다. 모든 걸 자신이 관리해야 하는 마이너리그에서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그라운드를 밟았고 가장 늦게 돌아갔다.

마침내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꿈의 무대 데뷔전 마운드에 올랐다. 한 마리의 뱀이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일본에서 160km를 찍었던 공은 91마일로 줄어들어있었다. 볼넷과 안타를 내주고 병살 유도. 그렇게 첫 데뷔전을 마쳤다. 짧은 시간의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그가 낸 성적은 6게임 5이닝 5탈삼진. 그가 바라고 팬들이 바랐던 세이브는 없었다. 거기까지였다.

돌고 돌아 고향팀으로 다시 복귀했고, 세 번의 선발 등판만에 시즌 첫승을 따냈다. 이전 두 번의 등판에서 사람들은 그의 투구에는 문제 삼지 않았으나 그를 선발 투수로 기용하려는 감독의 판단을 납득하기 어려워했다. 현역 최고령 투수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던졌다. 나 역시도 그랬다. 이제 첫승이지만 점점 감을 잡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나니 이번에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항상 남이 보는 시선보다 앞서가고 의문을 불식시키는 선수, 임창용.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라고 말하며 미국으로 건너갔던 그의 마음가짐은 지금도 유효한가 보다. 예전의 뱀직구는 그 위용을 점차 잃어가는 것 같지만 철저한 몸 관리로 나이에 비해라는 수식어가 들러붙을 틈을 주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본인도 어디로 향해 휘어갈지 모르는 공을 던져왔다. 사람들이 그리는 그의 성장 곡선은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왔다. 이제는 아름다운 마무리, 은퇴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그의 야구인생 끝을 사람들은 미리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골인 지점에 다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새로운 출발을 준비중이다. 이어달리기처럼 또 다른 자신에게 속도를 유지하며 바통을 던지는 것이 아닌 다시 신발 끈을 조이고 새로운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것이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온 비결인 것 같다.

그 끝이 어디일지는 그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달리게 하는 그의 마음은 아직 늙지 않았나 보다. 다른 이들처럼 현역 최고령이라는 타이틀로 그를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야구를 하게 된다면 그의 등번호를 새기고 싶었는데 이제 매주 그의 등번호를 달고 뛰고 있다

20여 년 전 그를 바라보고 응원하는 나의 마음은 그의 마음처럼 그가 던지는 공처럼 여전히 살아있고 꿈틀대고 있다.

[별담수첩] 늦은 나이에 미국진출하며 그가 남긴 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남들이 뭐라 말하든 그는 여전히 ...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