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육지를 벗어난 적은 단 한번 뿐이 없었다. 내가 있는 이 곳도 육지일까. 아무튼, 육지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향하러 나는 구청에 갔다. 당장 마주한 여행의 다음은 한참 뒤일 것이다, 아니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고, 유효기간이 있을 그것은 내가 만드려던 것의 배의 값이었다. 그래서 단수여권을 끊었다. 그 후로 갱신은 없었다. 여권이 필요없는 그 섬도 가본 적이 없었다.
가깝고도 먼 섬나라는 어릴 적부터 끔직이도 싫었다. 그들을 지칭할 땐 항상 놈자가 함께였다. 어릴 때 시내를 나가 어쩌다 그들의 말이 들릴때면 놈자가 아닌 더한 표현으로 그들을 지칭했다. XXX들 또 왔네. 그들에게 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황새가 날아올라야 했고, 독수리가 날아올라야했다. 당시에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멀리서 찬 공은 데굴데굴 굴러 도쿄를 무너트리는 대첩으로 만들었다.
아직도 싫다, 정확히는 그들의 수장이. 싫어하는 부류가 그들의 다수에서 그 한사람으로 바뀐 것일까. 이곳에서도 싫은 부류의 사람들이 태극기를 더럽히는데 저기에도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겠지. 그들이 싫다. 전부는 아니다. 촛불이 현해탄을 건넜다고 한다. 가깝고도 먼 그들이 해낼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왜 난, 그들의 감성을 좋아할까. 전부는 또 아닐 것이다. 그들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아닌 한 부류의 감성이리라. 다 알지는 못하니까. 봉준호가 좋다고, 송강호가 좋다고 한국영화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까.
잡설이 길었다. 오랜만에 심야식당을 꺼내들었다. 왜? 짧으니까. 짧아도 우리와 다른 울림이 있으니까. 한번뿐인 해외여행이라 그런 것일까 심야식당의 오프닝은 나에게는 인상깊다. 저 철길 아래 지하차도 벽을 만져봤으니까.
(자주 가지 않는 여행이지만, 눈으로만 담아오지 않는다. 평소 맡지 못했던 냄새들,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 있었을 것들을 손 끝에 담는다. 이를테면 몇 백 년 동안 대들보를 떠받쳤을 한옥의 기둥을 만져보는 것, 마루를 쓰다듬는 것, 돌담 곁을 걸으며 손 끝을 스치우는 것.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기억에 담아두어야 나중에 그 비슷한 것이 떠올랐을 때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눈으로 담은 기억보다 코로 담은 기억이 더 오래남듯이, 시각보다는 다른 감각의 기억이 오래남는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7시경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 부르지. 손님이 오냐고? 그게 꽤 많이 와. <마스타 曰>
글을 쓰며 해장이 조금은 된 것 같다, 마치 바지락국을 먹은 것처럼. 늦었으니 오프닝만 보고 이제 자야겠다.
마스타가 해주는 바지락국은 다음에 먹어야겠다. 우리동네에도 마스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꽤 많이 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