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게 막차를 얻어 탔다. 뒤를 돌아보다 생각에도 없던 버스의 네자리가 보였고, xx게 뛰어서 겨우 탔다. 옛날 생각이 났다. 버스 번호도 바뀌고, 차도 새로 바뀌고, 노선도 조금은 바꼈지만, 통학버스처럼 탔던 버스, 고복수와 전경이 탔던 버스, 그 황토색의 버스가 생각났다.
평소대로라면 어디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그게 나의 술버릇이니까. 지난 주말에 인제에 놀러 갔다가 나는 골로 갔을지도 모른다. 물소리를 듣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려 가다가, 옥수수밭에 걸려 넘어졌다. 비틀대가 넘어진 곳은 국도변이었다. 그 깜깜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소리만이 들리는 그 도로변에 털썩 주저 않자, 순수한 물소리를 담으려 했다.
헤드라이트가 몇 차례 비쳤다.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면 나는 골로 갔을 것이다. 나는 소리를 담는데 정신치 팔렸으니까. 그런데 '봄날은 간다'에 유지태처럼 소리가 담기지 않았다.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보이스톡을 눌렀다. 폰이 손에 제대로 잡히질 않을만큼 취했는데도 바로 꺼버렸다. 실수다.
집에 걸어 오면서 이 노래가 떠올랐는데, 그 누군가에게는 어떤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집에 오는 버스에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앞 자리에 잠이 골아 떨어진 아이 둘을 보살피는 엄마를 봤다. 조금 전에 떠올랐던, 그 전부터 떠올랐던 그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친구가 떠올랐다. 나는 정말 몰랐구나. 그 마음을.
술 마시고 새벽에 다다르면 그 친구가 사는 스페인은 아침이었다. 모두가 잘 때, 그 친구는 깨어있고, 그 친구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기에, 가끔씩 만취해 보이스톡을 누르고 내 나름의 주정을 부렸다. 잘 살고 있는 줄 알고 말이다.
스페인 살던 그 친구는 입국 소식도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걸 몰라서 섭섭하지 않았다. 간간히 내 주정에 섞어서 힘들다는 내색을 표현했으니까, 근데 나는 몰랐다. 온전히 내 힘듦만 말했으니까. 인제에 놀러가서 물소리를 듣고 그 친구가 떠올라 물소리를 담으려 했고, 실패하고 보이스톡을 눌렀다가 바로 취소하고 장문의 톡을 날렸다.
답이 없었다, 몇 일 동안. '나를 보며 위안 삼아.' 톡에 남길 수가 없았다. 그 마음 다 헤아릴 수 없으니까. 몰래 입국해 단톡방에 이러저러해서 연락 못 했다고 그랬었다. 그 맘을 정말 모르겠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물소리를 담아 보내려 했나보다.
어제 새벽에 그 친구에게 톡이 왔다. 자장가처럼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자고 있던 참이었다. 옛날 2g를 쓸 때처럼, 40자 안으로 연속으로 세 톡, 세개의 말머리가 도착했다. 잠결에도 그 맘 다 안다고, 그 힘듦 조금은 느낀다고 얘기 할 수 없었다. 조카 사진들, 조카 동영상들을 다시 봤다.
웃고 웃는 그 동영상들과, 맘마를 안 먹는 그 동영상들. 내가 보는 것은 찰나의 시간이지만, 아이 둘의 엄마는 억겁의 시간인 것을 나는 다 안다라고 이야기 하지 못했다. 두 아이의 엄마와, 스페인 저 멀리 떨어진 그 마음을 어찌 다 알리오.
내가 아는 그 세계로 들어갈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 거 말고도, 그 엄마들이 가는 세계로 들어갈까봐 더 걱정이 되었다. '나를 보며 위안 삼아~!'는 그 친구와 같이 얘기 둘을 낳은 친구가 한 말이다. 참 거시기 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었다. '거시기'에는 내가 담을 수도 없고, 그 두 친구가 담을 수도 없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세계 그 마음도 전하지 못했다. 나는 그 세계 너머도 그 친구에게 표현했으니까.
정말 미안했다. 그때는 정말 너머로 가고 싶었으니까. 그걸 표현해버렸었다.
뱉고 싶을 때는 출구가 있어야한다고 친구에게 톡을 했었다.
그래서 몇 일 만에 연락이 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군대 갈 때 '이등병의 편지'를 부를 때 눈가에 고인 눈물을 알아봤잖아, 너는.
나도 보이지 않는 너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우리가 서른즈음을 알 만 한 나이가 되었나보다.
광석이형은 정말 서른즈음에나 불렀을텐데.
그 세계로 갈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는데, 빠져들면 한 도 끝도 없다.
깨어 나야지.
그 가사의 너도 나고, 나도 너다.
현식이형님은 그렇게 노랫말을 썼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지었더라도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나도 매 번 나에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불렀으니까.
3800
고등학교 때 나 노래 잘 했는데, 나이 들으니 너가 둘 남정네들 영 아니라고 ㄴ그랬었는데 말이야 ㅋㅋㅋㅋㅋ
힘들 때 다 보기 싫을 때 있지, 그렇고 그렇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락해줘서 고맙다.
입국해서 본가도 가깝고, 힘듦도 조금은 알았는데, 연락을 못해서 미안해.
우리 친구들 만나기 전에, 조만간 보자.
너 만나면 안아줄래, 내 친구.
오늘도 술에 취해 남기는구나.
조카들은 잘 재웠으려나, 스페인 사는 우리 토니형은 마누라 없이 아들 딸내미 없이 잘 지내려나.
매번 눈빛으로 대화하는 아미고 토니형도 같이 왔으면 좋으련만.
스무살때였나 냉장고 청하 다 없애버릴 때.
아무 걱정 없던 그 때가 그립다.
엄마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