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적기전에 포토샵을 켰다. 그전에는 크롬을 열였다. 포토샵보다 크롬이 더 먼저 열린다. 대문 사진을 합성하기 위해 포토샵을 열였고, 옆 모니터에 옮겨논 포토샵 화면을 보면서 합성보다는 글로 설명하는 게 빠르겠다는 마음으로 오른쪽 끄트머리에 X를 눌렀다.
(합치기만 하면 될 걸 만들어 놓고도 몰랐네? 어포스트로피 s 없는 거 근데 왜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할까?)
포토샵이 자리하던 옆 모니터의 화면은 멜론이 차지했다. 어제가 결제일이었다. 돈이 빠져나가는 문자가 오고나서 아차 싶었다. 한달이 훌쩍 지났구나. M3P 50 에 가입되어있는데, 50곡 다운로드 받을만 한 노래를 다 골라났나 싶었다. 저번 달은 나머지 곡 고르다가 스페인하숙 1회 BGM 으로 50곡을 맞췄었는데, 하루만에 50곡을 다 내 맘에 드는 곡으로 다 채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책상 모니터 앞에 앉는 게 더 우선이었는데, 귀찮았다.
'스페인 하숙' 2화부터 5화까지 BGM을 올려 논 블로그를 찾았다. 유튜브 링크를 친절하게도 연결해놨다. 역시나 네이버는 우클릭은 허용이 안된다. 결국 일일히 타이포를 쳐야 했다. 한타도 독수리타법인데, 영어로 일일히 옮겨야 했다. 다운로드 받은 49곡이 우리말이 아닌 곡이었다. 이럴거면 애플뮤직으로 갈아 타도 될 까. 그 블로그에, 결국은 스페인 하숙에 정말 많은 노래가 나왔지만, 좋아요가 많은 곡들 우선으로 플레이 리스트를 채웠다. (어디 어디 cf삽입곡) 이런 곡들이 많았다. 네이버 뮤직 초이스가 사라지고 나서는 방송국놈들의 플레이 리스트를 훔쳐오는 게 지금 나에게는 답이다.
유튜브 좋아요도 별로 많지 않은, 이 곡을 듣는 순간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노래를 다운 받아서 들으니, 점점 전곡 스트리밍과 다운로드에서 1분듣기만 허용되는 요금제로 다운그레이드 한 입장에서 이 곡은 첫 마디부터 좋았다. 저번 글에서도 이야기 한 것 처럼 콜드플레이의 가사를 온전히 못 들어도, BTS의 노래를 반도 너머 사람이 들어도 말 소리의 울림이 들리는 것 처럼 결국 그 어떤 것은 있구나를 느낀다.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멀티 히트를 쳤다. 말 그대로 한 게임에 안타 두 개를 쳤다. 힘을 빼니 안타가 나오더라. 처음이다. 야구를 시작한지 3년차던가,,,4년차던가. 4타수,4 출루, 2안타, 그리고 유격수, 2실책. 팀 사상 처음 콜드 승. 게임 전에 그런 걸 그릴 수도 없고, 게임 중에도 그릴 수 없는 그림이었는데, 오늘은 정말 잘했다. 야구는 정말 모르겠다. 팀 스포츠고, 개인 기록도 중요하지만, 따로가 또 다르고 어떤 게 합쳐지는가에 따라 다르게 변하는 것 같다. 정말 공은 둥글다.
스포츠는 정말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적을려던 거 다 빼고,
역시 더하는 것 보다는 빼는 것이 어렵다.
케바케.
결국 이 말도 속담처럼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면 인정 할 수 밖에 없다. 세상 어디에나 통용되는 속담이나 격언이나 명언은 그 나이테나, 흙이 쌓이고 쌓인 그 바닥의 베이스를 무시 할 수 없다. 'case by case'라는 단어도 급격하게 쌓인 20세기, 아니 21세기에 떠 오른 단어여도 무시 할 수 없는 그 단어가 됐을 것이다.
오늘 내가 한 야구 게임을 예로 들면, 중견수가 잡으면 맞는 타구를 좌익수와 서로 콜을 부르다 혼선이 있었다. 그건 중견이 잡았어야 할 타구 였지만, 좌익수의 성격을 봤을 땐 중견이 비켜줬어야 맞다고 나는 봤다. 지나고 나서의 이야기지만 우리팀 중견수는 타자가 친 타구의 공을 놓쳤다. 우리팀 좌익수는 욕심이 많고, 중견, 좌익 둘 다 수비를 잘 한다. 정답은 중견이 처리해야 했다. 그러나, 답은 욕심이 많은 콜을 먼저 한 좌익이 잡는 것이 맞았다.
이럴 때 케바케가 발동한다. 중견수 친구가 좌익수 친구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공도 처음부터 놓쳤고, 그러면 비켜주는 게 팀으로서도 맞다. 팀이니까. 결국 놓쳤다. 썽을 졸라 낼 것 같던 욕심 많은 좌익수 친구는 성질을 죽였다. 다행이다 여겼다. 팀 분위기 헤치지 않는구나. 썽 내지 않으니 다행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야구하느라 역사적인 순간을 못 봤다. 정말 케릭터 다른 세 정상이 야구처럼, 만약에가 없이 이렇게도 만나는구나를 느꼈다. 야구가 끝나고 집에 왔을 때는 트럼프가 오산기지에서 연설을 할 때 였다. 통역이 직역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재자'라는 말이 거슬렸다. 김정은이 독재자가 맞지만 그렇게 직설적으로 표현 할 건 아니였지 않나 싶었다. 김정은이 듣기에는 안 좋은 표현이니까. 뭐 알아서 잘 들었겠지만.
김정은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맞지 않는 표현이 아닐까 싶은 것을 표현하려는데, 또 빨갱이라고 오해받을까봐 적는다.
역설적이게도, 오늘 세 정상간의 만남이 기분이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씁쓸했다. 70여년이 다 되었는데도, 미중소, 아 미중러 를 벗어날 수 없구나.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쑈를 펼치고 가는구나. 역사속에 남은 멕아더를 지금도 소중히 여기는 세대와, 내가 접하지 못한 느낌을 오늘의 역사를 보는이들에게 그 정도의 뉘앙스를 풍기고 갔겠구나를 느꼈다.
인정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의 비율.
10:0
8:2와 2:8이 대화를 통해 7:3과, 3:7을 만들고, 6:4와 4:6을 만들어 가는 과정.
나는 그걸 보고 싶다.
5:5는 건강하지 않다.
근데 10:0의 마음은 아니잖아요.
제발 쫌!
보이지 않은 것들의 무엇.
역사를 좋아하지만, 역사에서 잘 배우지 못 한 것이 많은 것 같다. LIVE로 보지 못 한 영상의, 지나고 본 뉴스에 오르 내리던 장면에서는 트럼프와, 김정은 위주의 장면이 많은 것 같았다. 문 대통령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내일 뉴스가 궁금해진다. 어떻게 쓸 것인가, 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관이 있던 시절과, 카메라가 있는 지금은 다를테니까.
역사란 무엇인가.
F학점을 맞고, 재수강해서 C-로 간신히 턱걸이 했던 교양수업이었다. 우리 학교는 워낙 학점이 짰으니까, 이건 핑계고, 일단 그 수업은 '기미 독립선언서'를 조사만 빼고 모든 단어를 한자로 깍두기 공책으로 적어내야 C+이상이 보장되는 수업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 했다 여겼다. 캠퍼스 과반이 예술대생인데 이건 좀 과하지 않나 싶었다. '교수님, 전공도 힘들다고욧!'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반 이상에 선언서를적어냈다. 그럼 핑계지.
아무튼, 그 때 중간고사 문제는, '사관은 무엇인가'였다.
나 나름대로는 두장에 걸쳐 잘 적어냈던 것 같다. 그래서 재수강에 '기미 독립선언서' 한자 쓰기 다 못 썼는데도 낙제는 안 받았던 걸로.
사관. 한자가 기억나질 않는다.
나는,
어떻게 볼 것인가로 적었다, 한 인물에 대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김진명 작가의 감성적이고 또 감성적인 소설에 고등학교 때 젖어있었다. 나도 한 때는 너무 젖었다. 대통령의 구두 굽이 닳고 닳아 뭐 어쩌고 저쩌고. 하아. 핵을 개발해야 하는데, 사실도 아닌 과학자를 소설에 모셔와서 막판의 소설에 일본을 응징하는 그 레파토리. 국뽕을 안 맞을 수가 없었다.
그때, 북악스카이웨이 드라이브 가보고 싶었다. 아직도 못 갔다.
한반도에 핵이 있어야 할까, 아닐까는 아직도 나는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아직도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는 것이겠지?
고개를 쳐 들고 바라본 책장에 박힌 빨간 표지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한 김진명의 또 다른 여러 장편들의 묶음은 고등학교 시절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 옆에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가 친구를 잃고 4권부터 고꾸라져 있다. 그 옆에는 사놓고 읽지 않은 일그러진 그 어떤 분의 노란색 표지의 삼국지, 최인호의 '유림'이 놓여 있는 자리였는데. 두 시리즈 모두 사놓고 안 읽고 있다가 아버지가 내 책장에서 당신 방으로 옮겨 읽으셨다.
상도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영화도 다시 보면 느낌이 다른데, 다시 읽어볼까.
나는 종교가 없다. 그럼에도 나의 왼쪽 손목에는 염주가 차 있다. 친구가 선물해준 걸 10년이 다 가는 세월동안 차고 있다. 약지에 반지가 제 몸 같이 있다가 없으면 허전한 것 처럼 그렇게 붙어있다. 주말이면 가끔씩 절 사람들이 집에 인터폰을 누른다. 외부인의 호출에 되도록이면 응대를 안 하는데, 절 집 사람들의 뒷 모습을 인터폰으로 본 적이 있다. 화면으로 넘겨 본 증거가 남았다. 커피를 들고 있었는데, 현관 앞에 버젓이 놓가 가셨더라. 그 다음에 또 그 사람들이 찾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ㄲㅈ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아니, 버리고 간 쓰레기 찾아가라고, 그런 맘이면 전도 할 생각도 하지 마시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오늘 생전 처음으로 112를 눌렀다. 살면서, 119는 한 번 뿐이었지만, 우리 가족을 살렸다. 그랬었다.
오늘은, 엄마와 동생과, 외삼촌 내외와 두물머리 구경을 갔다오셨나보다. 우리 동네와서 밥을 먹다가, 가는 길에 닭강정을 사고 가려는데 큰 밀집모자를 쓴 싼체스취객이 보였다. 싼체스 아재는 우리에게도 위협이었고, 닭강정 매장에게도 위협이었다. 지구대에서 일하시는 외삼촌은 참으로고 대꾸도 하지 말라고 나에게 그랬다. 참았다. 그저 엄마와, 여동생과, 외숙모 그 사이에서 펜스만 쳤다. 그리고 닭강정이 나오고 그 자리를 떴다.
동생이 무섭다고 했다. 남편도 없고, 자기 집에 가야하는데, 오빠가 있잖아. 맞은 편 정류장까지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내 시선과 동생과의 대화는 빨초노 밴드가 엮인 밀집모자의 싼체스 취객아저씨였다.
닭강정 매장에서 참고 참다가 신고를 했다. 경찰이 출동했다. 그 전에 순찰 돌던 경찰차가 보이던 차에 그냥 보냈어는데, 헤꼬지가 있을까봐 뒤 늦게 신고를 한 것 같았다. 그 후로 바로 온 경찰들은 싼체스 아재를 훈방 조치했다. 그러다, 경찰이 물러나니 싼체스는 다른 매장, 옆에 까페로 돌진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ㅅㅂ
바로 신고, 같은 동네 사니까 여자 사장님이 있는 거 다 알고 있었고, 매장 안에도 여자가 많은데, 또 동생도 버스 타면서 봤는데, 싼체스 아재 나올 생각도 안 한다고, 근데 엄마한테 전화가 온다. 어떻게 됐냐고, 신고했다 그러니, 뭐 그런 거 또 껴들고 그러냐고 난리다. 하아...생전 처음이다. 112신고. 내가 지나가는 행인도 아니고, 그 전부터 상황 다 봤는데, 그냥 지나칠까.
상황을 다 지켜 본 동생이 엄마에게 잘 설명했다고 했다. 진짜.....이해가 안 돼.......엄마......이게 남 일인가, 엄마 딸이 까페에 있었으면 그랬을까.....엄마 마음도 물론 이해가 된다. 근데 그러면 안 돼, 엄마, 라고 내일 설명해줘야겠다.
결국 싼체스 그 놈은 경찰이 두 번 출동했지만, 두 번 다 훈방 조치 되었다.
출동한 경찰 직통 전화가 나에게 왔다. 관할 지구대가 위치도 제대로 몰랐다. 너무 화가 났다. 처음 훈방 조치 한 경찰들의 태도를 건너 편 정류장에서 동생과 함께 봤다. 그러다 다음 매장에 침입을 하고 나서 쫒아갔지만 경찰차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고를 했는데, 결국 그것도 계도 후 훈방 조치라니.
처음에는 경찰의 대응에 화가 났지만, 국회놈들에게 화가 났다. 공권력에 이렇게 힘을 못 실어주는구나. 경찰들이 신고 한 나에게 설명을 하는데, 신고 하는 것도 망설였는데, 아니 내가 왜 신고를 망설여야 했나도 화가 났고, 경찰이 나에게 이러이러해서 계도 조치 하고 훈방 처리했다는 자초지정을 설명하는 것도 화가 났다.
ㅅㅂ
싼체스 아재가 술 자시고 세상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걸 이해하려고 하는 지금 내 마임이 아이러니하다.
싼체스 아재를 떠올리다 생각 난, 어제 다운 받은 곡 중, 유일한 한글 제목의 곡.
지난 번 글도 그렇지만, 나는 착한 놈이 아니다. 그저 상식적인 놈이지.
마지막으로,
정말 오보이길 바랐는데,
부디 그 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