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도 그럴 때가 있다. 이닝 교대 사이 광고가 나오는 시점에 채널을 뉴스룸으로 옮겼다. 해외로 도망간 어떤 똥별의 뉴스가 첫꼭지에 나오고 있었다. 진작에 우선으로 다뤘어야 할 뉴스를 이제서야 주목하는구나.
군대 시절을 떠올리며 예비역으로서 여러모로 아름다운 이 강산 조국이 떠올랐다.
조국을 지키냐와 팰 것이냐, 조국이 어둠의 명령에 싸이냐 그 차이가 그리도 컸을까 싶다.
여러모로 후자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게 조국을 위한 길이 아니었을 까 싶었다.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우리는 젊음을 함께 사르며
깨끗이 피고 질 무궁화 꽃이다
욕 먹는 똥별들도 많지만, 별을 단 장성급 지휘관들의 영관급 시절을 기억하는 병사의 기억들을 가끔씩 보게된다. 아마도, 청와대에서 이뤄지는 장성 진급 뉴스의 댓글에서 일 것이다.
'우리 대대장님, 우리 연대장님 별 다셨네! 그러실 줄 알았어!'
그런 댓글을 여럿 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전역후에도 가끔씩 떠오르는 나의 지휘관들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높은산 깊은골 적막한 산하
눈내린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넋 숨져 - 간 그때그자리
상처입은 노송 - 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두 분의 대대장님과, 두 분의 수송관님과, 두 분의 군수과 간부님들이 생각났다.
우선 두 대대장님부터,
야수교(야전 수송 교육단),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들어선 그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못해도 5-60미터는 넘어보이는 적벽돌의 길다란 막사 건물을 마주했고, 시멘트 벽돌로 마감된 무미건조한 인사과 건물을 마주했다. 그 옆에는 대대장실이 있었다.
여러 절차를 마치고 대대장님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있었다. 나 말고도 다른 포대의 처음 보는 아저씨들도 같이 전입왔었다. 인사과장님이 대대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책상에 앉아 계신 대대장님이 아득히도 멀어보였다. 대대장실과 공관병들이 쓰는 건물이 인사과, 군수과 거의 한개 소대 병력이 쓰는 건물과 같은 길이였기에 당연했다.
포병대대에 전입 온 본부, 알파, 브라보, 챠리 병사들이 나란히섰다. 본부 인 내가 제일 끝에 섰다. 전입 신고도 아마 내가 했을 것 이다. 여려 절차를 마치고 '어서와라' 하며 대대장님이 악수를 건네고 일일히 인사를 해주셨다. 시설은 너무도 열악하고, 주특기 TO가 넘치는 곳으로 자대 배치 받았는데 그 손길이 따뜻했다. 대형면허 따고 왔는데 버스가 없다니!!!
그 후로 대대장님을 마주한 건 '경계 근무 이상무!'를 외칠 위병소에서, 본부와 수송부 사이에 있는 대대장실을 지날 때의 이등병 시절이었다. 그 때마다 항상 이름을 불러주며 잘 지내고 있느냐 하셨었다. 물론 나뿐만이 아니셨다. 본부를 포함한 멀찌감치 떨어진 포대의 400여명의 병사들이 각자의 이름을 들었을 것이다.
일병을 달고 첫 운행을 나서는 날이었다. 운전병들은 매일 아침 전 수송부원이 차량 일조 점호를 하고, 운행 나가는 병사들은 수송관님, 대대장님께 차례로 운행 신고를 한다. 가장 끝에선 나의 신고 때 대대장님은 '우리 OO이 첫 운행 나가는 구나?' 나에게는 용기를 주고 선탑자에게는 서툴러도 꾸짓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일러주셨었다.
상병도 달기 전에 두번째 유격을 맞이했다. 유격장 막사를 떠나려는데 작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대대장님은 계셨지만 그 자리에 1호차가 없었다. 사고지까지 대대장님을 차로 모시고 가야하는데, 훈련 인솔자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나를 찾았다.
'충성! 출발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훈련 기간 중반이어서 몸은 만신창이가 돼있는데 핸들을 잡은 손과, 클러치를 밟을 다리가 벌벌 떨리기보단 마음을 조금 떨었었나? 대대장님을 옆에 모시고 운행한 건 처음이었으니, 그것도 레토나가 아닌 1과1/4톤 일명 닷지로 말이다. 아무래도 승차감을 기대하기엔 거리가 있겠지만, 우리 유격장의 길은 그걸 초월했다. 모난 돌이 사방에 난무해서 빨리 가야했어도 도저히 빨리 갈 수 없었다. 그래도 나보다 빨리 갈 놈은 거기에는 없었을 걸?
처음 전입 올 때부터 나를 좋게 보셨는지 유격 때 좋게보셨는지, 수송부에는 내가 1호차를 물려 받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었다. 1호차 선임도 그랬고, 정비관님 정비반장님도 그러셨다. 요즘 대대장님이 니 얘기 많이 하신다고. 그러나 결정권은 수송관님이니깐.
결국 수송관님이 나를 뺏기고 싶지 않았나보다.
??? 자랑???
결국 한 달 후임이 1호차를 물려 받았고, 나는 대대 유일 사제차(에어콘 나만 나옴), 봉고 냉동탑 부식차를 물려 받았다. 월,수,금에 운행을 가는 부식수령에서 나는 계란을 단 한번도 깨뜨린 적이 없었다. 매 번 7-8판의 계란을 쌓아놓고도! 나는 1호차 했어도 잘 했을텐데. 말년에 포대에 고물처럼 서있던 레토나로 부대 인근 최전방에 유해발굴 차량 지원에 갔었는데, 4륜 기어가 고장난 차량임에도 그 험난한 지형을 잘도 다녔었다. 또 자랑...???
남아의 끓는 피 조국에 바쳐 충성을 다하리라 다짐했노라
눈보라 몰아 치는 참호 속에서 한 목숨 바칠 것을 다짐했노라
우렁찬 기상나팔 울릴 때마다 줄기차게 샘솟는 새로운 용기
벅차고 고될수록 즐거운 나날 부모형제 지키는 보람에 산다
전우여 이제는 승리만이 우리의 사명이요 갈 길이다
그렇게 두세달쯤 흘렀나. 대대장님이 떠나시고 새로운 대대장님을 맞이했다. 이취임식이 열린 다음날, 부식수령이 아닌 군수과 2종수령(기름) 배차가 났다. 보급 수송 대대로 두돈반을 운행을 나서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무파워 스티어링 휠, 핸들이 달린 차를 배차 받았다. 그날 배차가 많았던지 매 번 서있던 차를 배차계 내 맞후임이 나를 줘버렸네? 후임들부터 배려하는 이런 옹골찬 녀석.
고개를 넘고, 넘고, 또 넘고, 핸들을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고, 풀고 풀고 다시 풀고. 쉴틈이 없다. 커브길을 돌아 뒤에 가득 실린 기름통들의 묵직함을 느끼며 내리막을 내려오고 있었다. 무파워 핸들에 잔뜩 힘을 주고 풀고 있었을까. 저 아래서 낯익은 흰색 승용차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게 아니였어도 단번에 알아봤다. 마주오던 차도 내가 타고 있던 차의 부대번호를 봤나보다. 아직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지금도 뭉클하다. 대대장님 내외가 타고 계셨다. 이사를 마치고 떠나시는 길이셨나보다. 커브길을 직접 차를 몰고 올라 오시면서도 한 손을 높이 들어 흔들고 계셨다. 옆에 계신 사모님도 두 손 모두를 들어 잘들 있어라 웃으며 인사를 건네셨다.
활짝 웃으시던 대대장님의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계룡대, 육군 본부로 가신다고 했었다.
가끔씩 별 같지도 않은 별들을 달고 있는 똥별 군인들의 뉴스를 보면 그 때 그 시절 대대장님이 생각난다. 별은 다셨을까, 아니면 예편하셨을까.
내가 기억하는 대대장님의 인품으로는 충분히 별을 달고도 남으셨을텐데. 중령 계급에 전방 부대 지휘하시고 육군 본부로 가셨으면 장군으로 진급하시기에 충분하실텐데. 거기에 육사 출신이셨으니.
병장을 달고, 대대 체육 대회가 찾아왔다.대망의 축구 결승 전 때, 주장은 당연히 짬순으로 바로 나. 주말마다 매번 지던 2내무 후임들이 라인업도 내가 짜란다. 우리 1내무실은 인원도 적은데 항상 2내무실에 졌었다.
침상에 걸터 앉아 모두 모여 라인업을 짰다. 자연스럽게 내 이름부터 제일 위 꼭지점에 적었다.ㅋㅋㅋㅋㅋ후임들 표정...스트라이커???ㅋㅋㅋㅋㅋ야 내가 결정력이 없지, 실력이 없냐. 뭔 개솔???이라는 반응이지만 체념한 표정들. 그렇게 4개 포대가 3게임씩 예선을 거쳐 우리 본부가 결승까지 올라갔다.
군생활 두번째 맞이하는 축구 결승전, 일병때와는 기분이 다르다. 구석 꼭지점에서 선임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와, 제일 앞 꼭지점에서 못하기만 해봐라는 듯한 후임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뒷통수에 꽂히는 그 심정...
게임은 시작되었고 점수 없이 후반전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우리 포대 후임이 상대편 포대 아저씨들에게 연이어 무지막지하게 태클을 걷어 차였었다. 역시 에이스를 알아보나?
나는 곧바로 상대편 수비수에 응징을 가했다. 똑같이. 감히 우리 애들 건들여??? 골대 건너 포대 아저씨들이 빗발치게 야유를 건네며 나를 노려봤다. 나도 똑같이 노려봤다. 내가 눈깔 사나운 건 어디가서 안 뒤지거든요??? 나는 너네랑 달리 공만 건들였거든요?
우리 본부 포대장님(중위)보다 짬이 높았던 알파 포대장님(대위)은 병사들보다 더 큰 고성을 외쳤다. 야이 ㄱ샤꾸야!!!라고 외치는 걸 나는 뒷통수로 들어버렸다. 본채 만채 바로 고개를 돌려 우리 진영을 바라봤다. 우리 포대장님은 쫄았을까.ㅋㅋㅋㅋㅋ 후임들아 나 어때? 멋짐???ㅋㅋㅋㅋㅋ
득점 없이 치고 박는 공방전, 우리팀 골키퍼가 찬 공이 센터를 넘고 떨어져 다시 높게 떠올랐다. 상대 진영 수비수는 하나. 우리팀 공격수도 나 하나. 공중에서 수비수를 냅다 바닥에 꽂아 버렸다. 물론 정당하게. ㅋㅋㅋㅋㅋ분이 덜 풀렸었나.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 아마도 뒤에서 보고있던 후임들은 별로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포대 아저씨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나를 째려보는 챠리 포대장님의 눈매는 더욱 매섭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 나 이제 알파 포대에 운행 어떻게 가지??? 일주일에 세번이나 가는데...근데 골대 너머의 눈빛들로 너무 쎄게 차버렸네. 넣어버렸어 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고개를 돌려 골대를 돌아 구령대로 향했다. 뒤로 후임들이 달라 붙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마냥 포대장님이 팔을 벌리며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지나쳐버렸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령대 앞에 일렬로 도열했다.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휴가는 대대장님이 주신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대대 체육 대회에서 휴가증 다섯개를 받아왔다.
농구 우승, 축구 우승.
얘들아 나 다 참가했다? 거기에 골까지???
불만없지?ㅋㅋㅋ
군대서 축구 찬 썰까지 대대장님이 생각나서 웃으며 옮겨봤다.
아, 병장 때면 후임 대대장님이셨겠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마도 그분은 예편하셨을 것 같다.
평소에도 급한일이면 영내를 힘차게 뛰어다니던 영관급은 그 대대장님이 처음이었다.
유쾌하시고, 뒷끝이 없으셨다.
너무 늦었다. 역시 군대썰은 풀면...
이제 자즈앗!!!
다음편을 쓸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하극상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