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낌. 의. 공. 동. 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젖는 일이다!
이렇게 느닷없이 훅 들어올 때엔 대개 당황하곤 하는데 이번엔 대범하다. 알코올의 힘인가. 맥주를 마시면서 펼쳐든 그의 책에 완전히 빠져버려 밤을 꼴딱 셀 기세다. 언제나 느끼지만 혼자 마시는 술은 이래서 좋다. 꼴리는 대로 뭐든 할수 있으니 말이다.
신형철, 그는 누구인가.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저 그의 책에 소개한 프로필과 네이버 인명록과 몇몇의 신문 인터뷰 기사가 다일뿐. 처음 그를 알게 된건 신문 기사를 통해서였다. 급하게 한국에서 공수한 그의 책은 사랑에 빠지기 충분할 정도로 위험했다. 세상에서 가장 졸릴 것 같은 그의 문학동네 팟캐스트도 들으며 예의 그 느려터진 저음의 목소리에 깜빡깜빡 정신줄을 놓게 되던 날도 있었다. 피디가 재미없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면서 멋적게 웃던 그의 웃음소리가 참 정겨웠다.
그리고,
얼마뒤에 그를 잊었었다. 그랬었다. 나에겐 그저 한여름밤의 꿈같은 존재였다. 사랑의 큐피드 화살이 엉뚱한 시기에 엉뚱한 사람에게 쏘아진 듯 했다. 자고 일어나면 좀 달라 지려는지...
그러나,
이번엔 좀더 강렬한 듯하다. 아주아주 솔직한 기분으로 이 책을 다 씹어 삼켜 내것인 양 삼고 싶다. 이전에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무래도 알코올 때문이겠지. 날이 밝자마자 다시 그의 책을 짚어보자 다짐해본다.
그런데,
내려 놓을수가 없다. 그냥 그와 이밤을 불태우기로 한다. 그의 글은 비수가 되어 나의 몸에 여기저기 생채기를 낸다. 아마 부쩍 피로해진 내 몸이 더 아픔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서겠지, 그의 글에 칼날을 달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뭔가 달라진건,
그가 아닐 수도 있다. 오베론의 장난과도 같은, 모두가 헬레나에게 빠져 있는 동안 나는 헤르메스에게 연민을 나눠주고 있지 않았는가. 그런 내가 헬레나의 사랑놀음에 빠지게 된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프다.
비애와 더불어 사는 삶이 어쩌면 이런 것일까. 그래서 이렇게 바꿔 적는다. 삶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중)
문득 떠오른 그때 그 시절.
장정일과 기형도의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시절, 브레히트의 시를 읊고 다니던 그 시절이 눈물나게 그립다. 뭣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묻는다. 시란 무엇입니까. 시인 왈, 시는 메타포다. 시 조갈증에 걸린 우편배달부에게 이 시를 처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시는 고급 메타포의 일대 향연이다. 무릇 메타포는 수혈이다. 봄, 슬픔, 자본주의, 문학, 시인, 혁명, 시 등과 같은 혼수상태의 단어들이 젊은 피를 받아 막 살아난다. 뛰어난 메타포는 감각의 문으로 들어가 사유의 문으로 나온다.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중)
아! 오늘 밤, 나의 시계는 20세기 어느 날에 맞추어져 있다.
날 좋은 날, 시가 그리운 날, 시집 대신 선택하곤 했던 이 책이 이렇게 어두운 날, 짜릿함을 선사해줄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래서 책은 여러 번 읽어야 하나보다. 그래서 몇몇 책은 꼭 소장하기를 바래본다. 가끔씩 이렇게 나의 혈관을 긁는 울부짖음들이 심장을 깨우고 날선 감각을 돋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글이 정말 써지지 않는 날, 눈물 같은 날, 슬픔 같은 날, 병신 같은 날엔 이 책을 꺼내어 그의 느릿하고 깊은 음성에 기대어 한 글자씩 또, 읽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