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 오는 날의 드라이브
Driving on a rainy day
비오는 날엔 역시 드라이브가 적격이다. 자가운전보다는 조수석 디제잉이 더 좋다. 오늘처럼 부슬부슬 내리는 비엔 쇼팽이나 데미안 라이스를 듣는 것이 좋다.
차안에서 듣는 음악은 여러 가지로 좋다. 큰소리로 따라 불러도 좋고, 고막이 터지도록 볼륨을 올려도 좋고, 지나가는 사람과 풍경에게 음표를 던지며 구경하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바깥 세상과 고립되고 단절된 느낌이 좋다. 유리창 하나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마주하는 세상과 유리창에 매달려 있는 빗방울들이 순간의 감성을 더욱 단단하게 메어준다. 가까워보이지만 닿을수 없는 타인의 시선과 감성이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 줘서 더욱 좋다.
후두둑 차지붕에 부딪히는 빗소리도 좋고 빗물을 가르며 찰지게 굴러가는 타이어 소리도 좋다. 빗방울을 수백개 입자로 만들어 공기중에 날아오르게 하거나 떨어진 낙엽들을 도로에 흩뿌리는 소리도 좋다.
#2 비 오는 날의 정원
Garden on a rainy day
비오는 날엔 정원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비가 그치고 난 뒤에 생명의 고귀함이 눈앞에 펼쳐지고 나는 그대로 자연의 하나가 된다.
숨을 불어넣은 듯 물먹은 잎파리들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본다. 송글송글 맺혀 있는 물방울의 무게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달팽이 너덧이 와서 물을 마신다. 잎사귀가 흔들리고 물방울이 떨어진다.
수십마리의 나비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이제 막 태어난 것일까. 새끼 손톱만한 나비들이다. 깨끗이 씻어낸 공기입자에 생채기를 내며 정원 가득 작고 바쁜 날개짓을 가득 채운다.
나비들이 잎새에 내려 앉아 물이라도 마시기를 기다리는 작은 초록개구리 무리들이 있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 초록 풀더미 사이사이에 눈만 내 놓고 숨어 있다. 적절한 타이밍이 올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둥이와 배만 불룩불룩한다.
나무 뒤엔 이구아나 한마리가 초록덤불 속에서 개구리가 튀어나오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구리가 나비를 입에 넣는 순간이 이구아나가 원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거실 창에 대롱대롱 매달려 이 아름다운 순간을 즐기는 아이 둘과 내가 있다.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작고 어리다. 혹시라도 물방울이 떨어질까봐, 나비가 날아갈까봐, 개구리가 도망갈까봐, 이구아나가 숨어버릴까봐 숨소리를 죽이고 있다. 기대만발의 천진한 얼굴의 아이들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이내 지겨워 하고 곧 제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혼자 남은 나는 자연의 먹이사슬의 고리를 모두 목격한다. 나비는 개구리에게, 개구리는 이구아나에게 먹혔다. 이구아나는 개구리를, 개구리는 나비를 삼켰다. 달팽이는 모두 집속에 숨어버렸다. 숨막히는 광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