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끄적끄적 밀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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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생각날 때마다 적어 놓은 일기글입니다.

1

역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 갑갑증을 유발한다. 힘겹다. 나는 왜 그렇게 입만 꾹 다물고 있는지 모르겠다. 끝도 없이 오며 가며 던져지는 숱한 화제 속에 내가 공감할 것은 하나도 없고 끼어들 틈도 없다. 공감력이 떨어지는걸까, 순발력이 떨어지는걸까, 사회성이 떨어지는걸까. 셋다 문제인것 같다. 무의미한 시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의 시선은 바로 45도로 떨구어진다. 타일 바닥의 꽃무늬를 따라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스팀잇을 하고 싶다.

2

우리집 강아지는 닭가슴살을 제일 좋아한다. 접시 가득 담아오니 반가워서 빙글빙글 돌고 난리가 났다. 앉아, 기다려를 해 놓고 주방에서 한참동안 일을 보았다. 나와보니 아직도 녀석은 접시 앞에 말똥말똥 앉아 있는 것이었다. "먹어"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접시를 비웠다. 아무래도 이 녀석을 데리고 "먹는거 참는 개" 대회에 나가 상금을 노려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개만도 못한것 같다. 이놈의 식탐!

3

오늘은 왜 이리도 잠이 쏟아지는지 정신이 비몽사몽하다. 위층에서 리노베이션을 하는지 종일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린다. 풉! 갑자기 살룬님의 방귀 이야기가 생각난다. 살룬유난님의 방귀는 위층에서 층간 소음으로 컴플레인 들어올 지경이라 한다. 푸하하핫! 위층에서 아래층으로의 층간소음 컴플레인이라니! 요즘 들어본 이야기중에 가장 웃긴 유머이다. 엄청난 유머감각이다. 이후로 난 살룬유난님의 방귀이야기에 완전 꽂혔다. 조용히 하라고 위층에 대고 큰소리로 분사를 할까보다라는 생각이 든것도 그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신공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기에 그만 포기한다. 살룬유난님을 집으로 초대해야겠다.

4

살룬유난님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다. 스팀잇에서 만난 사람중에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재즈 드러머, 작곡가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그녀에게는 직업 이상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유투브에 방문해 보았다. 그녀의 음악을 듣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는 재미. 나 변태인가보다. 훔쳐보는 재미와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뮤비들로 가득했다. 음악으로 그녀와 자주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뭘 어쩌자는 것은 아니고.

5

아들 녀석이 와서 그런다. 엄마가 음악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요즘 작곡하는데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휴! 엄마는 음치였었... 나는 음치다. 아니 음치였었다. 요즘 너목보라는 티브이쇼를 보면 음치가 많이 나오던데 그정도는 아니었던것 같다. 대학시절 하도 노래를 시켜서 음치를 고쳐보기로 했었다. 처음엔 오기로 무턱대고 연습을 시작했는데, 매일 노래방에서 하루 3-4시간 연습한지 3개월만에 음치를 탈출했다. 당시 노래 좀 한다 소리도 듣곤 했다. 음치를 노력으로 극복한 케이스이다. 그러고 보니 난 여러가지를 극복한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또 자랑질이다. 나의 자랑질은 도무지 한계가 없다. 이것도 자랑이다. 입만 열면 자랑이다.

6

결국 조언이 필요하다는 아들에게 살룬유난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음악 선생님이라고 자랑했다. 또 자랑이다. 그녀가 추천한 앱도 소개해주었다. 오늘의 밀린 일기는 기승전 살룬이다.

7

스팀잇 시간을 줄이고 소설책을 맘껏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자 금단 증상이다.

8

며칠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욕구 때문에 조만간 그림을 그릴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삐삐 롱스타킹의 뻐드렁니와 주근깨를 그려 볼까. 제발 포스팅은 참아야 할텐데... 참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린다. 이제 생각 났다. 다행이다.

9

결국 포스팅을 올리고야 말았다. 또 하나의 흑역사를 만든것이다. 내가 그린 삐삐는 묘하게도 나를 닮아 있다. 그녀만큼은 영원히 나의 동심의 세계에 남아 있어야 할텐데 그녀도 나를 따라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시공간 여행을 할수 있다면 그녀와 만날 때 만큼은 나도 어린 소녀로 돌아가고 싶다. 어린 시절 나는 꿈에서 삐삐와 날아다니며 세계 여행을 하곤 했었다. 뒤로 걷는 이집트 사람, 물구나무로 걷는 인도 사람, 종일 거짓말 하는 콩고 사람, 머리 카락에 달걀을 바르고 다니는 브라질 사람, 발을 베개에 올리고 자는 과테말라 사람, 공부 안하고 캐러멜만 먹는 아르헨티나 학교, 망토크기만한 귀를 가진 중국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녀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10

스팀잇에는 나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난 그분의 글 한 자락에 기분이 왔다갔다 한다. 그런데 우스운건 하루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그러한 기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매일 매시간 리셋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알콜성 치매가 주는 따뜻한 선물이다. 집앞 편의점이 리노베이션으로 두달 동안 문을 닫는단다. 아! 할인 마트에 가서 맥주를 궤짝으로 들여놓아야 하는건가. 다크핑거님이 술 먹지 말라했는데...

추가.
최고의 유머감각의 소유자 살룬님께서 요런 명언을 한마디 남겨주셨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소문난 방귀에 냄새 없다 ㅋㅋㅋㅋㅋㅋ

#3 끄적끄적 밀린 일기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