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울렁증

Words
436
Reading
2 min
Listen
Play
8y

병이 도졌다. 나는 예감할 수 있다. 일을 끝내기 전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자다가 갑자기 욕지기가 올라왔다. 정확히 새벽 4시였다. 매일 새벽 4시면 잠에서 깬다. 더듬더듬 내가 겨우 두시간 남짓 잤음을 알아낸다. 욕지기가 올라오면 으레 심장의 두근거림도 함께 시작된다. 명치 끝에 커다란 시계를 달아놓은 듯 묵직하게 울린다. 째깍째깍. 파장은 점점 커져 가슴으로 팔다리로 머리까지 울린다. 째깍째깍 머리에서 짖어대는 울림때문에 깨질 듯이 아프다.

겨우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치고 다시 누워본다. 잠은 커녕 침대는 정박된 배처럼 파도를 타기 시작한다. 울렁거리는 속은 더욱 요동치고 두통은 파도소리에 맞춰 맘껏 두드린다.

나는 알고 있다. 이 증상의 원인을. 날짜가 다가와서 그렇다는 것을.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소설을 마무리하고 공모를 마쳤어야 했다. 계획이 어그러져서 해야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증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으니 평생을 이 증세와 함께 했다. 일을 마치는 순간 마법같이 증세가 사라질 것도 알고 있다.

얼른 마무리를 하자. 스팀잇 창을 열고 소설을 복붙해서 편집을 해본다. 한번 꼬인 문단은 펴지지가 않는다. 세탁을 잘못해서 주름진 공단 치마처럼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분량만 맞추어서 그냥 공모할까, 좀더 다듬어서 내년으로 미룰까. 아, 그럼 내년까지 이 증세를 달고 살아야 하나. 좀더 본다고 나아질 것도 아닌데. 어차피 공모 자체가 중요하니 대충 마무리하고 끝내자. 당선은 꿈도 꾸지 않잖아. 그래도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좀더 잘 해야지. 내 안의 자아들이 서로 자기의 주장이 옳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만! 조용히 좀 해! 샷 더 마우스!

이런걸 창착의 고통이라고 하는 건가. 훗! 솔직히 창작자라는 말이 나에게 가당키나 한가. 뭔가 만들어본적이 있던가. 아니다. 그러고보니 나는 창작자가 맞을 수도 있다. 평생을 만들어온 기획서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작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학생 때는 시험이나 숙제, 과제물 때문이었다. 숙제나 과제를 하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한밤중에 울면서 깨서 숙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숙제가 있다는 걸 깜빡한 날이었다. 숙제는 오히려 양반이다. 시험 전날은 뜬눈으로 밤을 새야했다.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사는게 꿈이었고, 대학을 졸업함으로서 시험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듯 했다. 사회에서는 기획, 아이디어가 발목을 잡았다. 한가지 주제가 주어지면 거의 24시간을 몰두해야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이력이 날만도 한데 아직도 울렁 증세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심호흡을 해보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심호흡을 수 없이 해본다. 이젠 기도에도 엄지손가락만한 시계가 들러붙었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image



벌떡 일어나서 랩탑을 켜고 음악을 틀고 앉았다. 심호흡을 몇 번하고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갑자기 춤추듯이 나의 손가락이 몇번 너울대더니 문장들이 완성된다. 금세 한 페이지 두 페이지가 늘어난다. 페이지 수가 늘어날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영락없이 신들린 손의 형상이다. 욕지기와 심장소리와 두통은 온데간데 없다. 허기가 몰려와 음식을 차려다 놓고 또 써대기 시작한다. 먹은 만큼 뱉어지는 글의 양에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두번 소설을 썼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비만이 될 것이다. 나의 마지막 소설에 영혼을 불어 넣는다.

드디어 공모 완료!


끝났습니다. 며칠 동안 멀리하던 알코올로 온몸을 적시고 밀린 잠을 푹 자보도록 하겠습니다.

공모후기

  • 능력 밖의 일은 하지 말자.
  •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신경쓰자.
창작 울렁증 | Ecency